미국 흑인 인종폭동 사례는 빈번히 언급되지만, 1921년 5월 31일 오클라호마 털사(Tulsa)에서 빚어진 백인 폭동, 엄밀히 말하자면 흑인 집단 학살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흑인 거주지구 그린우드(Greenwood)에 대한 백인들의, 군사적 침략을 방불케 한 파괴· 방화와 300여 명의 무차별 살육.
그린우드 지구는 미 연방 원주민 토지분배 정책에 따라 원주민지구로 조성됐지만, 남북전쟁 이후 흑인들은 분리-차별을 피해 그린우드에 잇달아 정착해 이내 흑인 경제활동의 거점이자 일종의 해방구로 만들어갔다. 1910년대 말 그린우드 인구는 약 1만여 명. 학교는 물론이고 근사한 호텔과 병원, 고급 보석 의류 상점, 극장, 레스토랑, 식료품점, 미용실, 도서관과 신문사까지 갖춘 흑인들의 ‘블랙 월스트리트’로 성장했다.
KKK 등 백인 우월주의자, 가난한 백인들은 그린우드 흑인들이 누리는 고급스러운 라이프 스타일을 질투하며 툭하면 린치를 가하곤 했다. 경찰력과 사법 권력은 물론 백인 전유물이었다. 1차대전 베테랑 등 일부 흑인들이 무기를 들고 백인들의 린치에 대응했지만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들은 소수였다.
1921년 5월 30일, 만 19세 흑인 구두닦이 청년 딕 롤런드(Dick Rowland)가 털사 다운타운 한 빌딩에서 백인 여성 승강기 오퍼레이터의 발을 밟는 실수를 저질렀다. 여성은 비명을 질렀고, 놀란 롤런드는 도망쳤다가 다음 날 체포됐다. 백인 신문들은 그를 ‘강간 미수범’으로 보도했다.
그린우드에 대한 백인들의 ‘약탈’이 그렇게 시작됐다. 주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해 방위군을 투입하기까지 약 24시간 동안 1,200여 채의 집과 상점이 파괴됐고, 300여 명이 숨졌다. 일부 백인은 경비행기로 기름 폭탄까지 투하했다고 당시 흑인들은 증언했다. 오클라호마 주정부의 공식 조사는 70년이 지난 1990년대에야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