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내년에 1,000만 명을 넘고 2050년에는 국민의 40%를 차지하게 된다. 요양시설을 이용할 사람이 갈수록 많아진다는 뜻이다.
가까운 미래에 요양시설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시설이 되지만 한국일보가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민주노총 산하 돌봄서비스노조와 함께 지난 4월 17~20일 요양서비스에 대한 인식 조사(일반 국민 1,000명·요양보호사 1,216명, 조사기관 우리리서치)를 진행한 결과 국민의 생각과 현실의 간극은 컸다.
1일 인식 조사 분석 결과, 요양보호사들은 낮은 임금과 중노동에 시달려 입소자가 만족할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상태로 파악됐다.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인한 피해는 입소자에게 돌아가게 되고, 요양서비스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조사에 응한 일반 국민은 대체로 미래에 요양시설의 도움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가족 중 몸이 불편해 보호가 필요하다면 누구의 도움을 받고 싶은지 묻자 '요양 전문시설 입소'(36.7%)를 가장 많이 택했다. '가정 방문요양
서비스'가 34.2%로 뒤를 이었는데, 둘을 합하면 응답자의 70.9%가 요양 서비스를 원하는 셈이다. '자녀나 배우자'는 20.6%였다. 요양시설 이용에 대해서는 69.3%가 '입소한다'고, 26.3%는 '입소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노후에 요양시설 입소를 고려하는 이유로는 '전문적 서비스'를 꼽았다. 전문가의 맞춤형 간호·돌봄을 받고 싶은 의사가 반영된 것이다. 시설에 입소하게 될 경우 가장 중요하게 보는 요소를 물었더니 '전문적인 간호서비스'가 37%로 가장 높았고, '맞춤형 치료보호'가 22.9%로 두 번째였다. 이어 '안전한 환경'(14%), '가족과의 교류 지원'(11.7%) 순이었다.
현장에 있는 요양보호사들의 시각은 달랐다. 국민이 바라는 '맞춤형 전문 돌봄'은 아직 불가능한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야간·조간 근무 때 혼자서 30명을 한꺼번에 챙겨야 할 정도의 고된 업무 강도 탓에 입소자의 상태를 주의 깊게 살피는 건 동화 속 이야기라고 했다. 보호사들에게 야간 근무 때 돌보는 입소자 수를 물었더니 78.7%가 '11~20명 이상'이라고 답했다.
서울 중구의 한 구립요양원에서 7년 넘게 요양보호사로 일한 김명임(66)씨는 "하루 종일 뛰어다녀도 기본적인 것밖에 못 해 어르신과 소통할 여유가 없다"고 토로했다. 인천의 한 민간요양원에서 일하는 이미경(59)씨는 "야간 근무 8시간 내내 30~40명을 2명이 돌봐야 한다"며 "휴게 시간이어도 혹시 모를 낙상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귀를 열어놔야 해서 휴식이 아닌 대기"라고 하소연했다.
이씨뿐 아니라 많은 요양보호사가 휴식 시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야간 근무 시 휴게 시간에 근무를 했느냐고 묻자 72.6%가 '일한 경우가 있다'고 답했다. 게다가 응답자의 절반 이상(50.7%)이 '일을 했는데 야간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했다. 야간 근무 시 복도 소파나 빈 침상 등에서 겨우 눈을 붙인다는 응답도 59.4%나 됐다. 경남 하동군에서 요양보호사로 활동한 지 8년이 된 오영숙(60)씨는 "어르신들에게 잘해 드리고 싶어도 센 노동강도에 체력이 떨어지니 쉽지 않다"고 말했다.
'노인학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질 높은 서비스 제공을 어렵게 하는 이유였다. 요양시설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응답자들에게 이유를 묻자 '기관을 신뢰하기 어려움'과 '학대 등 부정적 인식' 답변율이 각각 29.4%, 23.7%였다. 입소 시 우려스러운 점에 대해서도 '간병인의 불친절한 서비스'가 33%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보호사들은 한결같이 "늘 학대 아닌 학대와 마주해야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치매나 귀가 잘 안 들리는 입소자가 많은 탓에 큰 소리로 말하거나 변을 먹는 등 이상 행동을 막으려 자신도 모르게 몸이 먼저 나가는 경우에도 '학대 가해자'로 몰린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요양보호사는 "귀가 잘 안 들리는 어르신에게 손짓, 발짓에 입을 크게 벌려 말하는데 이걸 폐쇄회로(CC)TV로 보면 '삿대질'로 보여 학대로 둔갑한다"고 말했다. 김명임씨도 "몇 번을 말씀드려도 자꾸 기저귀를 뜯으셔서 큰 소리로 '어르신 그만하세요'라고 했더니 시설에서 경위서를 쓰라고 했다"며 "이게 요양원의 진짜 현실인데 올바른 케어가 가능하겠나"라고 되물었다. 마음먹고 노인학대로 걸면 살아남을 보호사가 없다는 게 현실이란 얘기다.
보호사들은 학대 논란에 자주 휘말려 입소자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게 된다고 했다. 서울 노원구의 한 시립요양원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김숙(55)씨는 "어르신들이 제일 원하는 건 대화와 스킨십이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가까이 다가갔지만, 이젠 어떻게 찍힐지 모르니 대화를 안 하게 된다"고 씁쓸해했다. 인천에서 방문요양보호사로 활동하는 이미영(50)씨는 "사회복지사나 공무원들이 현장이 어떤지 와서 본다면 그렇게 쉽게 노인학대로 몰고 가지 않을 것"이라며 답답해했다.
돌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나쁜 탓에 보호사들의 직업 만족도가 크게 떨어지는 것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보호사들의 업무 만족도를 물었더니 '만족한다'는 응답은 19%에 그쳤다. 김명임씨는 "국가가 인정한 전문직이지만 일부 어르신들이 밥이나 하고 용변 치우는 사람처럼 대할 때 자괴감을 느낀다"며 울분을 삼켰다.
일반 국민에게 입소자와 요양보호사 간 소통을 위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느냐고 묻자 38.8%는 '상호존중'을 꼽았다. 이미영씨는 "돌봄 노동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공짜로 하는 허드렛일', '엄마이니 당연히 할 일'"이라며 "보호사들에게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은 리얼미터·리서치뷰·우리리서치·리서치DNA·조원씨앤아이·코리아스픽스·티브릿지·한국사회여론연구소·휴먼앤데이터·피플네트웍스리서치·서던포스트·메타서치·소상공인연구소·PDI·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 등 15개 여론조사 및 데이터분석 기관이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반영하고 공동체에 보탬이 되는 조사가 필요하다는 뜻을 모아 2016년에 출범했다. 정부·기업의 의뢰를 받지 않는 '의뢰자 없는' 조사를 실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