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공학을 전공한 30대 초반 프레시(1년 차) 박사입니다. 타이틀이 박사인데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갖게 됩니다. 국내 연구기관에 포닥을 왔는데, 이 선택이 맞는 건지, 이걸로 취업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합니다.” 이공계 온라인 커뮤니티엔 이런 고민이 수두룩하다. 선배들의 댓글 조언은 실질적이다. “박사학위가 인생을 보장해 줄 거란 믿음은 하루빨리 버리는 게 좋습니다.” “어디 있든 퍼포먼스(논문 실적)가 중요해요.” 유독 한 문구가 눈에 띈다. “아프니까 포닥이다.”
□ 포닥은 ‘포스트 닥터’(박사후연구원)의 줄임말이다. 교수나 정식 연구원이 되기 전 일정기간 연구경험을 쌓는 이들을 말한다. 학위 받은 직후라 연구에 대한 열정도 실력도 상승세지만, 얼마 안 가 현실에 낙담한다. 대부분 계약직이라 경제적으로 어렵고 신분도 불안정하다. 교수와 대학원생의 중간 어디쯤에서, 잡무를 감당하느라 정작 ‘빅 페이퍼’(뛰어난 논문) 낼 시간은 챙기기 쉽지 않다. 포닥 없으면 안 돌아가는 연구실이 부지기수인데, 대우해 주는 곳은 흔치 않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포닥의 세전 평균 연소득은 3,700만~4,400만 원(2020년 8월 기준)이다.
□ 포닥이 되는 시기는 대개 30대 초·중반이다. 결혼과 육아까지 겹쳐 “바닥을 치는 기분”에 시달렸다는 경험담, 번아웃에 우울증이 왔다는 사연이 널렸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못 찾아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포닥 낭인’도 있다. 미래가 보장되는 의사 대신 과학자의 길을 택한 걸 후회하다가도, 아프니까 포닥이란 자조 섞인 말로 서로를 다독인다.
□ 뒤늦게 정부가 포닥의 지위를 법적으로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진작 했어야 할 조치를 이제야 하는 걸로 충분할 리 없다. 국내 이공계 포닥은 5,000여 명(1~3년 차)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아프지 않아야 AI 시대, 우주 시대를 바라볼 수 있다. 이공계 자퇴생이 서울대와 연·고대에서만 1,300명이 넘는다. 포닥의 삶이 달라지지 않으면 이 숫자는 줄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