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경제학자 제임스 헤크먼에 따르면, 교육 투자는 이른 시기 이뤄질수록 투입 대비 수익이 높다. 인적 자본은 이미 축적된 인적 자본을 활용해 추가적으로 개발되기 때문인데, 일단 어휘를 알아야 책을 읽어 지식 습득이 가능하고, 학습동기가 강할 때 학업성취도가 향상됨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되는 대목이다. 이는 영유아기 습득한 인적 자본이 이후 학습의 밑천임을 뜻하기도 한다.
영유아기 발달과업은 안정적인 유대감 형성, 언어, 자기조절력, 사회성 발달 등이다. 특히 주변 성인과의 유대감은 아동기를 넘어 성인기의 인지·사회정서적 발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영유아기는 타인에 대한 배려, 공감, 친절 등 사회성 발달의 적기이기도 하다. 자기조절력은 도덕성, 학교수업에 대한 집중, 타인과의 소통과 협력, 학업성취도와도 정(+)의 관계에 있다.
영유아기 발달과업을 달성하는 데는 주변 성인의 역할이 지대하다. 주변 성인이 합리적 규율 아래 자율성을 존중해줄 때, 무조건적 애정을 지속적으로 표현할 때, 도움이나 위로, 격려를 위해 곁에 있어줄 때, 타인과의 관계에 롤모델이나 안내자가 되어줄 때, 다양한 어휘에 노출되도록 대화를 많이 나눠줄 때, 영유아는 유능하고 사회에 공헌하는 성인으로 성장할 기반을 갖춘다.
하버드대학 행정대학원 교수이자 미국 언론인 세라 스마시는 주변 성인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표본이다. 그는 4대에 걸친 본인 가족의 기구한 역사를 저서 ‘하틀랜드’에 담았는데, 해당 도서는 경제위기와 사회적 불합리가 한 가족의 삶을 피폐화하는 과정을 절절히 그렸다. 대공황부터 시작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금융위기, 자연재해, 의료비 부담, 부실한 사회안전망 등이 스마시 가족을 빈곤과 불행으로 내몰고, 가족구성원이 알코올, 약물, 도박 중독,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에 노출되면서 그는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간절히 꿈꾼다. 하지만 고등학교까지 위험한 건축자재가 쌓여있고 공중에 농약이 살포되거나 아동이 납치, 살해되는 지역사회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빈곤과 불행의 대물림을 끊고 목표했던 삶을 이룬 후 사회경제적 외부 여건이 개인의 삶을 헤집으며 관통할 때의 무력감과 비참함을 생생하게 전한다.
고난을 극복한 아동을 연구해 보면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정서적으로 기댈 수 있는 보호자가 곁에 있다는 것이다. 세라 스마시가 그랬다. 어머니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보여준 그에 대한 믿음, 온화했던 돌봄과 진심 어린 관심, 그의 가능성에 대한 할아버지의 인정과 격려, 이들과 함께했던 놀이시간은 삶의 원동력이었다. 어려움을 이겨낸 아동의 두 번째 특징은 인문학 책을 많이 읽어 비슷한 여건에 처했던 등장인물로부터 위로와 혜안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의 미국 역사에 대한 심오한 이해나 흡입력 있는 필력으로 미루어 보아 이 경우에도 해당한다고 추측된다.
영유아가 주로 경험하는 성인은 대부분 부모와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의 교사다. 우리나라 영아의 58%, 유아의 89%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그래서 영유아가 발달과업을 달성하는 정도에는 부모와 교사 역할이 중요하다. 여러 실증 연구를 종합해봤을 때, 생애 초기 어머니가 경제활동에 참여하거나 대리양육기관을 이용하는 경우 아동 발달에 미친 영향은 일관적이지 않다. 부모 역할과 대리양육의 질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유아 발달에 유익한 부모 역할은 무엇인가? 통제성과 온정성을 띠어야 한다. 통제성은 행동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따르도록 가르치며 부적절한 행동을 제한하는 정도를 말한다. 온정성은 애정을 표현하고 의사소통을 중시하며 독립성을 격려하는 정도를 말한다. 교통안전이나 실종예방 수칙, 공공예절, 대인관계 등 안전과 사회 규범은 부모가 제한을 두고 몸소 실천해야 한다. 이를 가르칠 때는 자녀의 의도에 공감하며 행동 제지의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한 후 대안을 제시 혹은 협의해야 한다. 자녀를 유심히 관찰해 욕구나 필요에 따뜻하게 반응한다면 안정적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다.
아동의 사회경제적 성공에는 재능, 동기, 주변 환경이 영향을 미친다. 재능 발현, 동기 부여에 도움이 되는 부모-자녀 관계, 교우 관계, 물리적 환경 등은 부모가 만들어갈 여지가 있다. 동기는 아이가 흥미, 선호, 가치에 부합하는 활동을 하고 성취감을 느낄 때 강화된다. 영유아기에 재능을 찾고 동기를 강화하는 활동은 자유로운 놀이다. 부모는 아이들의 자유로운 놀이를 관찰하며 관심과 경험에 부합하는 학습을 지원하는 것이 좋다. 성인의 개입이 필요한 상황에서 경청, 공감, 타협, 합의 등 적절한 상호작용을 가르치거나 배움으로 연결될 제안 또는 질문을 하고 공간에 데려가거나 물리적 자원을 제공할 수 있다.
아동의 삶과 탈맥락화된 학습지 풀기나 교사 주도의 획일적 활동은 배움의 즐거움을 앗아갈 수 있다. 한국아동패널을 활용한 필자의 분석에 의하면, 유아기 우울, 위축, 분노, 공격성 등 사회정서적 발달은 부모 학력, 가구 소득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정서적 역량은 인지 역량 발달을 견인하는데, 부모 역할에 따라 영유아기 역량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헤크먼의 설명처럼 이 시기 부모의 영향은 평생 간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의 “어릴 적 부모는 아이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간다”는 말처럼 말이다. 물론 세라 스마시처럼 다른 보호자가 부모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는 어린이집, 유치원 교사가 영유아를 형평성(equity) 있게 교육할 수 있는 기관운영체계를 마련하고자 유보통합이 진행 중이다. 어린이집은 0~5세를 대상으로, 유치원은 3~5세를 대상으로 한다. 유보통합은 두 기관의 근거법령, 관장부서, 교사 자격 및 양성, 근무조건, 교육과정, 시설기준 등을 통합해 동일 연령의 영유아가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도록 하는 정책을 뜻한다. 교육의 형평이란 교육에 대한 동등한 접근, 개별적으로 맞춤화된 형태의 동등한 질, 가정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보완하는 보충성, 세 요소로 구성된다. 따라서 유보통합은 아동 발달에 있어 동등한 출발선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맞춤화된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영유아기 적기 발달을 도모해야 한다. 최대한 동일한 조건에서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것이 공정이라면 유보통합은 공정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기틀을 닦는 작업이다.
영유아 발달을 지원하기 위한 교사 역할은 부모 역할과 일맥상통한다. 효과적인 가르침은 아동 고유성에 대한 깊은 관심과 민감한 관찰, 따뜻한 보살핌을 수반한다. 교사가 개별 영유아의 발달 단계나 교육 수요에 맞게 돌보고 가르치려면 유보통합을 통해 교사 1인당 아동 수를 낮춰야 한다. 현재는 영아반이 3~7명, 유아반은 15~30명에 이른다. 전문가가 권고하는 교사 1인당 아동 수는 연령반별로 3~8명이다. 아울러 교사가 영유아의 역량 개발에 디딤대를 놓아주려면 전문성이 중요하다. 특히 미래 세대는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의 발달로 언어와 공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일할 가능성이 높다. 가상의 업무 공간에서는 업무 완수에 대한 능동성, 소통 및 협업능력, 타 문화에 대한 개방성 등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유아기는 인성 발달이 가장 활발히 일어나는 시기로, 적기 교육이 미흡하면 추후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상당할 수 있다. 교사의 전문성을 높이려면 영유아 교사 양성학과 평가에 내실을 기해 우수한 교사 지원자를 선발, 양성해야 한다.
또한 교사 자격을 실제 교수 역량에 따라 세분화해 급여와 연계해야 한다. 현재는 교사 자격과 급여가 경력에 따라 구분되는 셈이어서 상급 자격을 획득하거나 급여를 높이는 등 전문성 개발 유인이 부족하다. 동시에 등ㆍ하원 시 부모와 교사 면담을 활성화하면 교사가 부모 역할의 조언자가 될 수 있고 기관의 구조적 환경을 부모가 목도할 수 있는 만큼 기관과 부모가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아울러 교사가 근무시간 중 교육활동을 실행, 계획, 평가하고 재교육에 참여하거나 부모를 면담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기술의 발달, 사회문화 및 공공가치의 변화, 보육교육 학문의 발전 등으로 영유아 교수법이나 교수내용이 바뀔 수 있다.
교사의 전문성은 지속적으로 신장돼야 영유아에게 유익하다. 재교육은 교사가 동료 및 전문가와 경험, 노하우, 이론 등을 나누며 현장에 적용할 실제 지식을 구축해가는 학습공동체가 집합식 연수보다 효과적이다. 따라서 교사학습공동체 확대 및 연계와 성과 공유가 필요하다. 각 학습공동체는 생성, 번영기를 지나 소멸기에 이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김인경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