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대모' 조성애 수녀 "응보적 처벌은 해답 아냐"

입력
2023.06.06 10:00
4면
<중> 사형제 폐지? 논쟁의 끝은
조성애 수녀, 사형수들과 40년 함께
"지은 죄에 합당한 벌 받아야 하지만
목숨 빼앗는 게 국가가 할 일은 아냐"
피해자 가족 모임 만든 이영우 신부
"울어도 웃어도 욕먹는 게 유족의 삶"
"사형만이 해법인 것처럼 봐선 안돼"

편집자주

26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으면서, 한국은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됐다. 그러나 사형수 59명은 여전히 수감 생활 중이다. 헌법재판소는 사형제에 대해 두 차례 합헌 결정을 내린 뒤, 이르면 올해 세 번째 판단을 내놓을 예정이다. 한국일보는 헌재 결정을 앞두고 사형제를 둘러싼 양자택일의 소모적 공방을 지양하고 더 나은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봤다.

"누구나 사형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형수를 만들어 낸 책임은 우리 사회에도 있습니다."

노수녀의 목소리는 크고 분명했다. 귀에 대고 소리를 쳐야 겨우 대화할 정도의 청력과 사라져가는 기억, 전과 같지 않은 의식에도 그의 눈빛은 사형제라는 말에 갑자기 또렷해졌다. 방 안이 울릴 만큼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에서 '사형수의 대모'라는 수식어가 납득이 됐다.

스물네 살에 수녀회에 들어온 조성애(92) 수녀는 40년 넘게 교도소 사목(司牧)을 맡았다. 교구 방침에 따라 몇 년 주기로 여러 곳을 이동해야 하지만, 그는 다양한 수형자들 중에서도 사형수를 교화하는 데에만 평생을 바쳤다. 삶의 벼랑 끝,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이들과 조 수녀가 주고받았던 인간적 교류는 한때 세상의 주목을 받아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으로 만들어졌고, 책으로도 출간됐다. 누군가는 그의 삶을 '감동적'이라며 추켜세웠고, 또 다른 이들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손가락질했다.

평생을 사형수들과 함께한 조 수녀도 어느덧 아흔을 넘기면서 세간의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스스로도 "종교인으로서의 소임은 이제 모두 마쳤다"고 했다. 악화된 건강에 2년여 전부터는 모든 사목을 내려놓고 충남 논산에 위치한 요양원에서 생애 마지막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는 지난 2월과 4월 기자와의 두 차례 만남을 기억조차 못했지만, 매번 같은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지은 죄 그대로 목숨을 빼앗는 건 국가가 할 일이 아닙니다."

'사형수 대모'의 마지막 호소... "응보는 해답 아냐"

평생을 사형수들과 함께해 왔지만, 조 수녀는 사형수 얘기를 꺼내자 의외로 덤덤했다. 그립지 않냐는 물음에 "보지 않아도 다 안다"며 고개를 저었고, "요양원으로 옮기면서 편지와 사진도 모두 불태웠다"고 말했다. 수차례 교구로 날아온 편지에도 "내 소임은 끝났다"며 일절 답장하지 않고 있다. 철저한 종교인의 태도였지만, 오랜 기간 교류하다 1997년 사형으로 세상을 떠난 김용제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질끈 감았다. "심장이 떨린다"며 한동안 깊은숨을 쉬던 그는 이내 "마지막으로 본 날이 기억난다. 좋은 곳에 갔을 것"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조 수녀는 "사형수들이 지은 죄의 끔찍함을 잘 안다"고 했다. 그러나 '응보적 처벌'은 결코 국가적 해답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사회의 책임은 구성원들을 교육하고, 교화하는 방향으로 실현돼야 한다는 것이다. 조 수녀는 "죄에 합당한 벌은 받아야 하지만, 목숨을 빼앗는 건 사회적 처벌이 아니고 '가장 센 형벌'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많은 사형수들이 범행에 이르기 전에 불우한 환경에서 고통받았다는 점도 그가 사형제를 '무책임한 권력 행사'로 보는 이유였다.

"형벌만 내세워도 유족들 상처 회복 안 돼"

조 수녀가 그렇다고 피해자 유족들의 상처를 외면할 생각은 없다. 그들의 상처를 보듬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평생 숙제"라고 말한다. 다만 조 수녀를 포함한 사형제 폐지론자들도 '유족들의 울분' 앞에선 종종 힘을 잃는다.

15년 가까이 교정 사목에 힘써 왔던 이영우 신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는 2006년 '피해자 가족 모임'을 만들었다. 처음엔 유족들이 모여 응어리를 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신문 구석에 작은 광고를 내며 시작했지만, 이후엔 국내 최초로 교도소에서 사형수와 피해자 가족들의 만남까지 성사됐다.

이 신부는 이 과정에서 "사형이 모든 유족에게 근본적 해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고통받는 유족이 있다면, 섣불리 '가장 센 형벌'을 제시하기 전에 해결책부터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울면 운다고 웃으면 웃는다고 욕먹는 게 유족들의 삶"이라며 "남은 가족마저 해체되고 꽁꽁 숨어버릴 수밖에 없는 현실은 외면하면서, 사형만이 유족들을 위하는 유일한 해법인 것처럼 다뤄선 안 된다"고 말했다.

"헌법상 국민 존엄, 여론으로 박탈 불가"

헌법재판소에서 진행 중인 사형제 헌법소원 사건에서 폐지론자들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10조를 핵심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청구인 측 김형태 변호사는 "범죄자들도 국민에 포함된다고 확인만 하면 되기 때문에, 재판관들이 위헌 여부를 가리기 위해 새롭게 선언하거나 판단할 여지도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열린 헌재 공개변론에서 청구인 변호인단은 "국민 일반과 범죄자 개개인에 대한 사형제의 범죄 예방 효과가 실질적으로 입증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응보적 처벌' 논리는 원시적 입법 목적에 불과하기에, 국가가 개인의 존엄을 해칠 수 없다는 헌법적 대전제가 훼손돼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헌법 제37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지만, 변호인단은 이 역시 근본 규범인 헌법 제10조를 넘어설 수 없다고 해석한다.

김 변호사는 "국민 법감정과 여론을 생각하면 당연히 사형제를 폐지할 수 없다"며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도 여론으로 사형제를 다룬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1981년 프랑스 의회가 사형을 폐지할 때, 헌법 제정 권력은 여론이 아닌 이성적 시민이라고 짚었다"며 "그 이성적 합의를 확인한 게 헌법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 다시 쓰는 사형제 리포트

<1> 죄와 벌, 그리고 59명의 사형수
<2> 사형제 폐지? 논쟁의 끝은
<3> 두 번의 합헌, 세 번째 결론은

논산= 이정원 기자
박준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