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넘게 기립박수와 환호... 김지운 감독·송강호의 위엄

입력
2023.05.26 16:52
25일 밤 칸영화제 '거미집' 공식 상영회
관객 '김지운' 연호하는 등 역대급 반응
흥행 부진 김지운 부활 알린 '영화의 시간'

편집자주

칸국제영화제를 10번째 취재 중인 라제기 영화전문기자가 칸에서 극장 안팎 이야기를 전합니다.

“김지운! 김지운! 김지운!”

연호와 삼박자 박수가 울려 퍼졌습니다. 25일 심야 프랑스 칸 뤼미에르대극장에서입니다.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거미집’ 공식 상영회였습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후 관객들은 10분 넘게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의례적인 박수가 아니었습니다. 환호가 잇따랐습니다. 스크린에 김지운 감독과 배우 송강호, 박정수, 장영남, 임수정, 정수정이 한 명씩 비칠 때마다 환호가 터졌습니다. 김 감독 눈은 충혈돼 보였습니다. 울음을 참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거미집’은 적어도 올해 칸영화제에서 상영된 한국 영화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레드카펫을 밟기 위해 송강호가 등장한 모습이 스크린으로 중계되자 뤼미에르대극장 객석에서 환호가 나왔습니다. 지난해 ‘브로커’로 한국 배우로서는 칸영화제 남자배우상을 최초 수상한 이다웠습니다.

상영 전부터 지펴진 열기는 영화가 시작되자 조금씩 더 달궈지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초반 한국 영화계를 배경으로 한 ‘거미집’은 ‘액자 영화’의 형식을 띠었습니다. 중견감독 김기열(송강호)은 악몽에 시달립니다. 최근 막 촬영을 마친 영화와는 전혀 다른 장면들이 꿈속에서 생생하게 반복됩니다. 김기열은 재촬영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힙니다. 하지만 영화사 백 회장(장영남)은 괜히 돈 버리지 말라고 완강히 재촬영을 거부합니다. 엄격한 심의를 다시 받는 것도 골치 아프니 손사래만 마냥 칩니다. 광기와도 같은 김기열의 열정은 백 회장의 조카이자 영화사 실세인 미도(전여빈)가 도와주면서 결국 촬영으로 이어집니다.

영화는 두 개의 구조가 병렬하며 긴장과 웃음을 만들어냅니다. 김기열이 새롭게 촬영하는 영화의 내용, 영화 촬영을 막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맞물립니다. 김기열이 만드는 영화는 출생의 비밀이 담긴 막장 치정극으로 스릴러이면서 공포이고 종국엔 무시무시한 괴수 영화입니다. 1970년대 횡행했던 작위적인 음성 연기가 웃음을 부릅니다. 카메라 밖에서 벌어지는 난장은 주로 웃음을 제조합니다. 유부남 남자배우와 여자배우의 은밀한 관계, 불도저 같은 성격의 미도가 벌이는 사건, 문공부 심의 담당 공무원의 급습 등이 잔재미를 만들어냅니다.

영화는 섬세한 세공술로 1970년 초반으로 관객을 데려갑니다. 영화 ‘인랑’(2018)과 드라마 ‘Dr. 브레인’(2021)으로 대중들의 싸늘한 반응을 받았던 김지운 감독이 오랜만에 자신만의 솜씨를 제대로 발휘합니다. 티에리 프리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중요한 건 송강호가 여기 와 있다는 것”이라며 경의를 표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상영회 열기의 8할은 김 감독 몫이었다고 봅니다.

‘거미집’은 각자 자기 위치에서 자기 잇속을 차리면서도 종국엔 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영화에 대한 사랑이 들끓는 사람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이 나오는 요즘입니다. 2,000명 넘는 관객들이 턱시도(정장)에 보타이를 매거나 드레스를 입고선 2시간가량 영화의 세계에 빠졌고, ‘거미집’의 지휘자 김지운 감독에게 박수와 환호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25일 한밤중 뤼미에르대극장에서는 영화가 여전히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칸=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