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새 전셋값, 공시가도 크게 떨어진 데다 보증보험 가입 문턱도 높아졌어요. 임대인들은 돈 못 빼준다, 임차인들은 돈 돌려받을 수 있냐고 난리인데, 이 상황에서 거래가 될 리 있나요."
23일 서울 강서구 화곡역 6번 출구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손님을 맞기 위해 문이 활짝 열려 있었지만, 오가는 사람은 없었다. 대표 우모(49)씨는 "전셋값을 2,000만 원 정도 내리면 바로 나갔지만, 지금은 8,000만 원을 내려도 안 나간다"며 "임대인과 임차인 간 믿음이 붕괴돼 시장 기능도 멈췄다"고 한숨을 쉬었다.
맞은편 다른 중개업소에선 전화기 너머로 임대인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도배, 장판 새로 해야 들어온다며. 다 하고 가격도 낮췄는데 왜 세입자가 안 들어와." 난감한 표정의 중개인은 곧 전화를 끊은 뒤 고개를 저었다. 그는 "수요자는 안 보이고, 만기가 한참 남은 임차인한테서 전세금 돌려받을 수 있냐는 확인 전화만 받는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전세사기 대책 이후 시장은 몸살을 앓고 있다. 전세보증보험 가입 강화, 빌라 시세 공개, 임대인 체납 정보 확인 등 정부의 총공세가 이어지면서 시장은 역전세난 속 임대인과 임차인 간 불신만 쌓이는 모양새다.
정부는 이달 전세보증보험 가입 기준을 기존 전세가율(매맷값 대비 전셋값 비율) 100% 이하에서 90% 이하로 강화했다. 주택 가격 산정 시 공시가 적용 비율도 작년까지 150%였으나, 올해부터 140%로 바뀌면서 이달부터는 전셋값이 공시가격X126% 이하여야만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무자본 갭투자'를 막기 위한 조치다. 세입자들이 보증보험 가입이 안 되는 집은 꺼리는 탓에 통상 전셋값은 가입 한도 내에서 맞춰진다.
현장 중개업소들은 이를 두고 "임대인(집주인) 만세 부르게 하는 정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만세 부른다'는 업계 은어로 임대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해 손을 놓는 상태를 일컫는다. 임대사업자 A씨가 이에 해당한다. 그는 "현재 4억5,000만 원인 전셋값을 새 보증보험 기준에 맞추면 3억3,500만 원으로 떨어진다"며 "여러 채의 보증금을 빼주기 위해 대출도 다 당겨 썼는데, 세입자는 안 구해지니 정책이 빠르게 바뀌는 사이 임대인들은 꼼짝없이 사기꾼이 될 처지"라고 한탄했다.
정부는 2월 대책 발표 당시 전세가율이 90%를 넘어도 반전세(보증부 월세)로 돌려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고 유도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영등포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대표는 "월세로 돌릴 여력이 있는 집주인은 전체의 20%도 안 된다"며 "대다수는 공사비, 전세금 등 큰돈을 당장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반전세로 돌린다 해도 이젠 세입자가 꺼린다. 임차인 김모(27)씨는 "전세금 대출 이자에 월세를 또 내고, 거기에 관리비까지 낼 생각하면 굳이 비싼 반전세로 들어갈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인천 미추홀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대표는 "전세에서 월세로 돌린 집은 현재 전월세전환율도 높은 데다, 집주인이 어떻게든 돈을 충당하려 하니 월세가 시세보다 높다"며 "금리 인상에 월세도 올라 계약갱신청구권으로 연장하겠다는 사람이 많지, 신규 거래는 적다"고 답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매매뿐이지만 거래가 얼어붙은 탓에 쉽지 않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공개된 올해 1~4월 서울 비(非)아파트 매매·전세 거래량은 각각 6,840건, 3만6,278건으로 2006년 통계 집계 이래 최저치를 찍었다. 화곡동의 부동산중개업자 B씨는 "2억1,000만 원이던 전셋값이 1억6,000만 원으로 떨어지자, 집주인이 매매로 내놓은 뒤 세입자에게 차액 5,000만 원에 대한 이자를 매달 줄 테니 팔릴 때까지만 살아달라고 부탁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임차인들은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다. 부동산중개업소에는 연일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달라", "보증금 만기 때 돌려받을 수 있느냐"는 전화가 빗발친다. 아직 계약하지 않은 임차인도 마찬가지다. 정부 대책대로 안심전세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시세를 미리 조회하고, 임대인의 세금 완납 증명서를 요구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 됐다. 특히 보증보험 가입이 안 되는 집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게 현장 전언이다. 심지어 보증보험 가입이 돼도 임차인 걱정은 이어진다.
임차인도 할 말은 있다. 신모(26)씨는 "전세사기 피해자들한테 '네가 확인 안 한 탓이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냐"며 "부동산도, 집주인도 책임지지 않고 임대인에게 돈 받을 방법은 소송밖에 없는데 최대한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싶다"고 했다. 신씨는 한 달간 근저당이 없고, 전세가율 80% 이하인 전셋집을 찾다 결국 월세를 택했다. 보증금은 집이 경매로 넘어가도 무조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최우선변제금 이하로 맞췄다. 신씨는 전세보다 월 10만 원씩 더 내야 하지만 마음이 훨씬 편하다고 했다.
실제로 집주인이 전세금을 주지 않으면 임차인 입장에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전세금반환청구 소송을 하거나 강제경매뿐이다. 이마저도 집주인이 돈이 없으면 돌려받을 길이 없다. 형사처벌로는 사기죄가 그나마 가능성이 있지만, 집주인의 고의성 입증이 쉽지 않다. 법무법인 심목의 김예림 변호사는 "전세금반환청구 소송은 판결까지 약 1년, 강제경매까지는 약 2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소송 기간 발생한 비용과 스트레스는 임차인 몫이다.
결국 시장 불안 속 가격은 기능을 잃었다. 전셋값은 계속 떨어지고 있지만, 거래도 함께 줄어들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서울 다세대·연립주택 전세가격지수는 지난달 96.8로 2017년 12월 수준까지 떨어졌다. 반면 전세 거래량(서울부동산정보광장 26일 기준)은 4월 5,119건으로 6,000건을 밑돌았다. 지난해 8,000건대에서 급감한 것이다. 미추홀구 한 부동산중개업소는 "이달 들어 전월세 계약을 하나도 못 했고, 전세사기 공포로 수요자가 100명에서 1명으로 쪼그라든 것 같다"며 "20년 만에 최악의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정부는 시장과 다른 시각이다. 전세사기가 근절되는 과정 중 하나라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보증보험 가입 강화로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임대인이 느는 것에 대해 "시장이 건전해지기 위해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세가율 100%를 유지했다면 마구잡이로 집을 사들이는 무자본 갭투자가 여전했을 것"이라며 "전세사기를 막으려는 정부 의지는 단호하다"고 강조했다.
초토화한 빌라시장과 달리 아파트는 여전히 거래가 있지만, 불신은 함께 번지는 분위기다. 현장 부동산중개업소에 따르면, 아파트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보험에 들고 싶다는 임차인이 늘어나는 추세다. 문제는 비용이다. 예컨대 전셋값 5억 원짜리 아파트의 전세가율이 80% 이상이라면 연 0.128%의 보증료율을 적용해 2년간 128만 원을 보증보험료로 내야 한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그간 전세제도 자체를 느슨하게 운영해 왔고, 결국 보증보험료 등 전세제도를 유지하는 데 드는 간접비용이 늘어나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전세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