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에 뚫려서? 뚫릴 때까지 쏴서?…'뚫리는 방탄복' 감사 논란 [문지방]

입력
2023.05.28 13:00
감사원, 장병들에 배급한 방탄복 품질 지적 
"사격 시험하는 부위만 단단하게 만들어" 
 업체 측, "악의적 제보와 부실한 감사 결합" 
"감사원, 영문 규정 잘못 해석해 검사 진행"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뚫리는 방탄복'이 우리 군 장병들에게 보급됐다."

감사원이 18일 내놓은 감사 결과입니다.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방위사업청이 2021년 A업체에서 5만6,280벌의 방탄복을 사들였는데 불량품이라는 것이죠. 무려 107억 원에 달합니다. 업체는 '꼼수'로 성능 시험을 통과했고, 품질을 점검해야 할 국방기술진흥연구소(국기연)는 이 사실을 알고도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겁니다. 업체의 눈속임과 정부기관의 안이한 일처리에 생명을 위협받는 '부실' 방탄복을 지급했다는 설명입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감사원이 장병들의 안전을 지키고 소중한 생명을 구한 셈입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집니다. 국기연과 A업체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피감기관이 '관가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감사원을 치받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죠. 그만큼 억울하다는 얘기일 텐데요. '뚫리는 방탄복'과 '엉터리 감사'. 양측 주장 가운데 무엇이 진실일까요.

감사원 "국기연, 시험 부위만 강화된 방탄복 알고도 넘어가"

우선 감사원이 A업체 방탄복을 부실하다고 판단한 근거를 살펴보죠. 감사원은 지난해 '장병 복무여건개선 추진 실태' 감사를 벌였습니다. 우리 장병의 건강과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유해 요인을 찾아 차단하기 위한 것입니다. 장병들에게 지급되는 '1형 방탄복'도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감사원은 A업체 방탄복을 살펴보다 수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다른 부분은 방탄 소재 '50겹'을 붙여 만들었는데 목 둘레와 좌우 옆구리 부분에만 고밀도 방탄 소재를 추가로 덧대어 '56겹'으로 강화한 것이죠. 왜일까요. '성능 실험할 때 목과 옆구리에 총을 쏴 후면 변형 여부를 확인한다는 점을 알고 덧댄 것'이라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었습니다. 실제 전투 때는 적의 총탄이 어디로 날아올지 모르니 모든 부위가 튼튼해야 하는데 A업체가 눈속임했다는 것이죠.

국기연도 A업체가 특정 부위에만 방탄 소재를 추가로 덧댄 걸 알고 있었습니다. 시제품을 뜯어 내부를 확인해봤기 때문이죠. 하지만 국기연은 이를 문제 삼지 않고 설계안에서 일부만 수정하라고 지적한 뒤 업체가 낸 품질보증계획서를 승인했습니다. 이후 국기연은 실물 방탄복 성능 시험을 하는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에 A업체가 시험 부위에 방탄 소재를 추가로 덧댔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죠. 기품원은 통상적인 시험 방식에 따라 목 주변과 좌우 옆구리 등에 사격했고, 기준을 넘어서는 변형이 없다고 확인했습니다. 국기연은 이를 근거로 A업체가 방탄복을 양산하도록 허가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감사원은 A업체의 꼼수를 바로잡을 기회가 한 번 더 있었다고 지적했는데요. 'A업체가 특정 부위만 튼튼히 해 방탄 성능을 조작한다'는 익명의 민원이 접수된 겁니다. 이후 국기연은 1차 시험 때와 조금 다른 부위에 총을 쏴 성능을 재차 검증했지만 이번에도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하지만, 감사원이 다시 시험해봤더니 일부 방탄복의 중앙부가 총알에 관통되거나 안쪽으로 심하게 찌그러졌습니다. 소재를 추가로 덧대지 않은 부위였죠. 실제 전투현장에서 이 방탄복을 입은 장병들이 총탄에 맞았다면 찌그러진 소재가 몸을 찔러 다치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감사원은 결론 내립니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방사청에 A업체로부터 새로운 방탄복을 다시 납품받고, 이 업체의 향후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하라고 통보했습니다. 또 국기연 담당자 2명을 징계하라고 요구했죠.

업체 측 "추가로 덧댄 건 유연성 확보 위한 아이디어…특허도 받아"

A업체는 크게 반발했습니다. 자신들이 만든 방탄복은 불량품이 아니라 혁신 제품이라고 항변했습니다. 당초 방사청은 납품 희망 기업들에 '방탄복이 방탄력은 물론 유연성도 갖춰야 한다'고 요구했는데요. 방탄복이 아무리 튼튼해도 너무 뻑뻑해 이를 착용한 장병들이 불편함을 느끼면 임무 수행에 어려움을 겪을 테니까요.

그래서 A업체는 접히는 부위에 고밀도 소재를 덧대자는 아이디어를 냅니다. 방탄복의 옆구리 부위 등을 두껍게 하면 그 주변 부위는 쉽게 접힌다는 원리였습니다. 업체는 이 기술로 특허도 받았습니다.

A업체는 방탄복 성능을 문제 삼은 민원 또한 악성 제보자의 해코지라고 주장합니다. 관련 기업의 전직 직원인데, 그가 A업체의 생산 과정을 촬영해 중국 측에 유출했다는 것이죠. 이에 대해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A업체는 설명했습니다. 업체 관계자는 "감사원의 요구는 방사청에 70억~80억 원어치의 방탄품을 다시 납품하라는 것인데, 회사 문을 닫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습니다.

국기연도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감사 결과만 보면 이 기관이 마치 제품의 하자를 눈감아 준 것처럼 나와 있죠. 하지만 국방부가 방사청에 제시한 구매요구서에 명시한 대로 시험 규정에 따라 방탄복 성능을 제대로 검증했다고 주장합니다. 미국 국립사법연구소(NIJ)의 방탄복 시험 기준을 따랐다는 겁니다. NIJ 규정에는 양측 옆구리와 목, 중앙 부위에 총 6발을 사격해 관통이 없고 후면변형이 44㎜ 이내여야 합격 처리한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습니다.

국기연은 "50겹만으로도 튼튼한데 일부분만 56겹으로 해 더 튼튼하게 만든 걸 문제 삼을 수 있느냐"고 항변합니다. 또한 민원이 접수된 이후 방탄 소재를 덧댄 부분을 피해 재차 사격시험을 했지만 성능에 문제가 없었다는 겁니다.

업체·국기연 "90도로 수차례 직격...잘못된 시험"

결국, 업체와 국기연은 '감사원이 무리한 감사를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감사원이 방탄복 성능을 직접 확인하겠다며 기품원에 맡겨 추가 시험을 진행했는데요. 이때 NIJ 규정을 어겼다는 지적입니다. A업체 관계자는 "NIJ 기준에 따르면 방탄복 중앙 부위에 각각 30도와 40도, 90도로 쏴야 한다"면서 "그런데 감사원은 90도로만 사격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비스듬하게 사격하면 방탄복이 받는 충격의 강도가 약해지겠죠. 실제 전투현장에서는 움직이면서 쏘기 때문에 탄환이 방탄복을 정면에서 직격하는 일은 드물다고 합니다. A업체 대표는 "뚫릴 때까지 총을 쏘면 안 뚫리는 방탄복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발했죠.

감사원도 이 같은 규정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NIJ에는 예외 규정이 있는데 이를 적용해 시험했기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죠. 감사원 관계자는 "NIJ 규정을 보면 '특별하게 제작된 방탄복(Special Type Armor)은 소재 및 구조 등을 검사해 적절한 시험 방법을 결정하라'고 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즉, 일부분만 더 튼튼하게 제작된 제품은 '특별한 방탄복'이기에 NIJ의 일반 규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방탄력이 약한 중앙부에 90도로 3차례 발사한 시험 방식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죠.

반면 국기연은 "감사원이 예외 규정을 잘못 해석했다"고 말합니다. NIJ 규정상 '특수 형태 방탄복'이란 주문자가 특별 요청해 맞춤형으로 만든 제품을 뜻한다는 겁니다. 예컨대 특정한 성능을 넣어 지뢰 제거 작업을 하는 요원이 입을 방탄복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을 때 예외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얘기죠. 군수 업계에서는 "NIJ 규정에 대해서는 당연히 국기연이 감사원보다 더 잘 알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옵니다. 하지만, 감사원은 외부 법률 전문가의 자문까지 거쳤다며 자신만만한 표정입니다.

방사청이 A업체와 계약한 방탄복 5만여 벌 중 4만9,000벌은 이미 일반 장병들에게 보급됐습니다. 감사 결과처럼 '뚫리는 방탄복'이라면 시급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업체와 국기연의 주장처럼 감사원이 규정을 잘못 적용해 억지 감사를 한 것이라면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A업체는 감사원을 상대로 직권남용,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뚫리는 방탄복 논란을 둘러싼 양측의 입장이 워낙 첨예하게 맞서는 터라 다툼이 상당히 오래 지속될 전망입니다.


유대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