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전투기 'F-16'이 조만간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전개될 태세다. 확전 우려를 이유로 F-16 전투기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미온적이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 이를 긍정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자마자, 우크라이나군 조종사들에 대한 훈련이 시작됐다. 아직 F-16 제공을 최종 확정한 건 아니지만, 훈련은 곧 지원 수순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F-16 전투기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개전 이후 줄곧 서방에 요청해 왔던 무기다. 가볍고 빠르며, 무엇보다 미국이 보유한 장거리미사일 등 무기 대부분을 장착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더 안전한 지역에서, 더 정확하게 러시아의 공격에 방어할 수 있다.
전쟁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까지 평가받는 F-16의 투입이 가시화하자, 러시아의 불안감도 커지는 모습이다. 러시아는 "핵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엄포를 하고 나섰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이날 "더 파괴적인 무기, 더 많은 무기가 (우크라이나에) 공급되는 건 '핵 종말' 가능성을 키우는 것"이라고 밝혔다. 베트남과 라오스를 순방 중인 그는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 등과의 인터뷰에서 "세계가 더 위험해질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의 발언은 F-16의 우크라이나 전개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서방 국가의 F-16 지원 움직임이 급물살을 탄 시점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같은 날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F-16 훈련이 폴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 시작돼 기쁘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19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기간 중 F-16 훈련 계획을 승인한 지 나흘 만에 조종사 훈련 개시를 공식화한 것이다.
전체적인 훈련 기간도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미 공군 내부 문서 등을 인용해 "4~6개월 안에 훈련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상 훈련 기간은 2년 정도다. F-16 전투기를 운용 중인 네덜란드와 덴마크, 벨기에 등은 별도의 공동 훈련 계획도 짜고 있다. F-16 미보유국인 영국조차 해당 훈련을 지원할 방침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역시 러시아의 '핵 위협'에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들과 만나 "F-16 전투기 훈련을 지원하는 게, 우리를 분쟁 당사자로 만드는 건 아니다"라며 "우리는 유엔 헌장에 명시된 '자위권'을 우크라이나가 갖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러시아 본토 공격에 미국 무기가 활용된 정황도 러시아의 불안감을 키우는 요인이다. 22, 23일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러시아 서쪽 벨고로드 지역에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러시아인 무장단체 '러시아자유군단'과 '러시아의용군단'이 러시아군과 교전을 벌였는데, 이때 미국산 장갑차 'M1224 맥스프로'와 군용차량 '험비'가 포착됐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보도했다. NYT는 "최소 3대가 발견됐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전투 장비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해당 공격에 관여하지 않았고, 민병대에 어떤 군사 장비도 제공하지 않았다"고 선을 긋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