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는 '인공지능(AI) 챗봇' 서비스의 역사 인식은 어떨까. 본보는 23일 교육부 산하 동북아역사재단의 전문가들과 이를 검증했다. 오픈AI사의 '챗GPT(GPT-4)'와 구글의 '바드'에 한일 간 민감 현안을 묻고 답변을 평가했다. 한국어나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질문해 객관성을 높였다.
두 챗봇은 비교적 엄정하게 사안을 풀어냈다. 다만 △동해 명칭 △독도 △사도광산에 대해서는 엉뚱한 답을 내놓기도 했다. 정부와 학계가 적극 대처해야 할 부분이다.
동해(일본해)에 대해 묻자 두 챗봇은 위치와 표면적, 수심, 서식 생물 등을 정확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한일 양국이 첨예하게 맞붙어온 '해역 명칭'에 대해서는 엉터리 답변이 많았다.
챗GPT는 "전 세계 바다 명칭을 정하는 국제수로기구(IHO)가 최근 '일본해'를 공식 표준명으로 인정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IHO는 2021년부터 표준 해도집에 동해나 일본해 대신 번호로 표기하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이전까지는 '일본해'로 단독 표기했었다. 우리에게 유리하게 바뀐 것이지만 AI는 이를 알지 못했다.
바드도 동해 명칭과 관련해 일부 오답을 내놨다. "한국은 '동해'가 유일하게 정확한 명칭임을 주장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1992년부터 ‘동해/일본해 병기’를 공식 입장으로 삼고 있다.
'독도'에 대해서도 틀린 정보를 알려줬다. 바드는 "독도는 한국 울릉도에서 200㎞ 떨어진 일본해에 있다"고 답했다. 실제 거리(87.4㎞)와 한참 차이가 난다. '멀리 떨어진 외딴섬'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정영미 독도연구소장은 "강원 동해시 묵호항이나 경북 울진군 죽변항에서 독도까지 거리가 약 200㎞쯤 되는데 이를 헷갈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챗GPT는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도를 반환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고 답했다. 사실이 아니다. 정 소장은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라 독도가 반환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특히 챗GPT와 바드는 독도가 '다케시마', '리앙쿠르 암초'로도 불린다며 영토 분쟁 지역이라고 언급했다.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독도를 분쟁 지역화하려는 일본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한일 간 잠재적 갈등 현안인 '사도광산'에 대해서는 균형 잡힌 설명을 하지 못했다. 일본은 조선인을 강제동원해 개발한 이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계획이다.
챗GPT와 바드는 "사도광산이 한때 일본에서 가장 큰 금광이었으며 혁신적 채굴 기술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면서도 강제노역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반면 바드에 한국어로 같은 질문을 하자 "한국 정부는 사도광산이 조선인 강제동원의 아픈 역사를 간직했기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고 답했다. 챗봇은 질문한 언어로 작성된 자료에 근거해 답을 내놓기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바드는 영어로 물었을 때 '사도광산이 이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며 왜곡된 정보를 알려줬다.
반면 201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군함도(하시마섬)에 대해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한국인과 중국인이 하시마 광산의 가혹한 환경에서 일했다"며 "한국이 문화유산 등재를 반대하자 일본은 이 역사를 인정하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조건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군함도에 대해 답할 때 유네스코 결정문을 참고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두고는 두 챗봇이 비교적 객관적으로 답했다. 다만 영어권 학자들의 인식이 많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정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강간, 살해 등 극단적 피해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서술됐는데 이렇게 되면 이 범주 밖의 다양한 피해 사례는 주목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역사 현안에 대한 우리 입장이 담긴 영문 자료를 인터넷으로 더 많이 공유해야 전 세계인이 애용하는 AI 챗봇의 답변에 반영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양적 경쟁에서 일본을 앞서긴 쉽지 않다. 따라서 AI가 답을 찾는 원리에 맞춰 맞춤형 전략을 짜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명주 서울여대 바른AI연구센터장은 “AI는 각국 정부나 국제기관 등의 사이트에 올라온 문서에 가중치를 둬 답변을 작성한다”면서 “공신력 있는 사이트에 우리 입장이 담긴 자료가 올라가도록 전략을 짜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