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틸든은 권력욕은 부족했지만 큰 정치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공공심은 충만했다. 그는 뉴욕공공도서관으로 자신의 정치를 완성했다.
19세기 후반 뉴욕은 인구 기준 프랑스 파리를 추월하고 세계 최대 도시였던 영국 런던을 추격하던 거대 도시였다. 하지만 도시의 정신적 거점이라 할 만한, 내로라할 공공도서관이 없었다. 독일 이민자 출신 부호 존 애스터(John Astor)가 유산 40만 달러로 1849년 건립한 ‘애스터 도서관’과 제임스 레녹스(James Lenox)의 ‘레녹스 도서관’이 있었지만, 전자는 도서 대출이 안 되는 연구자 중심 도서관이었고, 후자는 구텐베르크 성경 초판본 등 희귀 도서와 값진 개인 소장 도서 위주로 책을 구비한 박물관에 가까운 도서관이었다. 두 도서관은 1890년대 심한 재정난을 겪고 있었다.
틸든의 유언 집행을 위해 설립된 ‘틸든 트러스트’는 1895년 5월 23일 애스터-레녹스 측과 도서관 통폐합 및 공공도서관 건립 계약을 체결했다. 그렇게 1910년, 서가 길이 121km에 이르는 오늘의 5번가 뉴욕공공도서관 건물이 완공됐다.
1911년 5월 23일, 장서 100만여 권을 갖춘 도서관 개장식이 당시 대통령과 주지사, 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고, 다음 날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첫날 이용자는 약 5만 명. 도서관 측에 따르면, 그로트(N.I. Grot)란 학자의 니체-톨스토이 비평서 ‘우리 시대의 윤리사상들(Ethical Ideas of Our Time)’이란 책이 첫 대출 도서였다고 한다.
근년의 뉴욕공공도서관은 3개 연구센터와 92개 지점 및 뉴욕 전역의 마을 도서관과 네트워크를 구축한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다. 도서와 시청각자료 등을 포함한 컬렉션은 약 5,100만 건. 도서관 측은 한 해 평균 1,800만 명이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고, 200여 개국 약 3,200만 명이 도서관 웹사이트를 방문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