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선거민주주의 흑역사의 희생자

입력
2023.05.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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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 새뮤얼 틸든-1

새뮤얼 틸든(Samuel Tilden, 1814~1886)은 18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이던 공화당 러더퍼드 헤이스 후보에게 실제로 이기고도 낙선한 비운의 정치인이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처럼 그는 유권자 투표에서 헤이스를 압도했고, 선거인단도 17개 주를 휩쓸며 과반수에 한 명 모자란 184명을 확보했다. 문제는 선거인단 20명이 걸린 사우스캐롤라이나와 플로리다 루이지애나 개표 논란이었다. 남북전쟁 직후여서 연방군이 주둔하고 있던 지역이었고, 그 점을 들어 공화당 측은 해당 지역 선거는 무효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틸든은 충돌을 우려, 격분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시종 자제를 촉구했다.

양당은 15명 특별 선거위원회를 구성했다. 각 당 의원 각 5명에 양당 지명 대법원 판사 각 2명, 그들이 뽑은 중도(무소속) 판사 1명. 그런데 ‘캐스팅 보터(casting voter)’였던 중도 판사가 상원 선거에 출마해 버렸고, 그 자리가 공화당 법관으로 채워졌다. 8대 7. 논란은 다시 원점으로 회귀했다.

팽팽히 맞서던 양당은 후임 대통령 취임식을 불과 이틀 앞두고 정치적으로 타협했다. 민주당이 원하던 바, 즉 남부지역서 연방군을 철수시키고 흑백분리법(짐 크로법)을 용인해 주는 대신 대통령 직은 공화당에게 양보하기로 한 것. 틸든은 당시 민주당 표밭이던 남부 3개 주에서 선거인단 단 한 명도 확보하지 못했다. 그는 반노예제를 지지한 당내 개혁파이자 소수파였다.

그는 뉴욕의 부유한 약제상의 아들로 태어나 예일대와 뉴욕대를 졸업한 뒤 변호사를 거쳐 정치에 입문, 뉴욕 주지사를 지낸 뒤 대통령 후보가 됐다. 평생 독신이었던 그는 1880년대 초 정계 은퇴 후 은둔하다 별세했고, 재산 700만 달러(근년 기준 2억1,000여만 달러) 중 400만 달러를 뉴욕 공공도서관 건립 기금으로 유증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