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성산동 우리동생동물병원 김재윤 원장은 반려견 ‘달래’(12세 추정) 보호자 이시연 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래 발치가 예정된 달래의 이빨은 5개였지만, 김 원장은 “원래 발치를 하기 위해서는 뿌리를 남기지 않기 위해 상당히 많은 치과 기구를 사용해 신중하게 뽑는다"면서 “그런데 달래의 이빨 4개는 그런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이 수월하게 뽑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진료비를 아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달래의 이빨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달래는 처음 시연 씨의 반려견이 됐을 때부터 치주 질환을 달고 있었다고 합니다. 시연 씨는 5년 전인 2017년 12월 달래를 입양한 이래 매년 한 번씩 달래의 이빨에 낀 치석을 제거하기 위해 동물병원을 찾아 스케일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심각해진 치주 질환은 나아지기 어려워서 이제 달래에게 남은 치아는 송곳니 4개와 앞니뿐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언뜻 심각해 보이는 상황을 전하는 시연 씨의 목소리에는 걱정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여유가 한껏 묻어 나왔습니다.
2017년 11월, 경기 시흥시에 위치한 번식장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 화재로 번식장에 있는 개들 중 26마리가 질식해 죽었고, 78마리가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에 의해 구조됐습니다. 당시 강아지들의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해 제멋대로 자라난 털은 잔뜩 엉켜 있었고, 불에 그을리기도 했습니다. 개들은 평생을 뜬장에서만 살아온 듯, 처음 밟은 땅을 어색해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달래는 이곳에서 종견으로 살아왔다고 합니다. 다행히 시연 씨가 임시보호를 거쳐 입양을 결정한 덕에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달래도 번식장에서 지내온 친구들처럼 난생처음 맞이한 자유를 어색하게 느꼈던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시연 씨는 달래가 처음 집으로 온 날의 광경을 잊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산책조차도 쉽지 않았습니다. 밖으로 나갈 때면 달래는 늘 불안한 마음에 두리번거리곤 했다고 합니다. 시연 씨는 “달래와 함께 아파트 단지를 돌려고 땅에 딱 내려놓는데 걷지를 않았다"며 “어쩌면 집 밖으로 나가면 다시는 편안한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불안해하는 듯했다"고 당시를 설명했습니다. 보통 반려견 보호자들은 실외 배변만 하는 강아지들을 걱정하지만, 달래는 오히려 집 안에서만 배변을 봤다고 합니다. 마킹이라도 좀 하면서 다른 개들과 소통하기를 바랐지만, 달래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헌신적인 돌봄 덕에 달래의 마음은 조금씩 열렸습니다. 주 양육자인 시연 씨를 알아보고 곁을 떠나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그는 “다른 가족들도 잘 챙겨주고 있지만, 그래도 달래는 나를 더 많이 찾는 듯하다”고 말했습니다.
마음의 문을 연 것은 긍정적이었지만, 달래의 이빨 상태는 빈말로도 좋다고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 원인도 달래를 괴롭게 했던 번식장에 있었습니다. 김 원장은 “달래의 이빨에는 치석이 다른 반려견에 비해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치석이 많은 경우는 사람의 음식을 많이 먹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는 “건식 사료만 먹는 반려견의 경우 치석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되지만, 습식 사료나 잔반, 밀가루가 많이 섞인 음식을 먹으면 이빨에 음식물이 잘 달라붙는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번식장은 사료값을 아끼기 위해 잔반을 주로 사용한 만큼 치석이 생기기 더 쉬운 환경이라는 게 김 원장의 설명입니다.
사실 아픈 치아를 뽑아주고 나면 크게 관리가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더군다나 건식 사료만 먹는 달래의 경우, 건강한 치아들을 잘 살려서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는 큰 불편이 없다고 합니다. 김 원장은 “사냥을 하는 야생동물에게 이빨이 없어서 지장이 있을 순 있겠지만, 집에서 사료 먹는 동물에게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시연 씨 역시 생각날 때마다 치약으로 이빨을 조금씩 닦아주는 것 이외에 특별한 관리는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지금 관리해야 할 쪽은 노화로 하나둘씩 나타나는 질병의 조짐이라고 합니다. 최근 진행한 건강검진 결과 달래의 심장은 일반적인 경우보다 조금 큰 정도라고 합니다. 다만 비대성심근증 등 질병이라고 말하기는 이른 단계라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합니다. 김 원장은 “지금은 약을 먹거나, 공격적인 검사를 하기보다 체중을 좀 감량하고, 다음 검진 때 한 번 더 확인하도록 지켜보는 단계”라고 말했습니다.
시연 씨 역시 “기침을 조금 하길래 혹시 심장에 문제가 있나 싶었지만, 감기약을 먹고 보니 싹 나았다”면서 차분히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눈에도 백내장이 생겼지만 시야가 흐려지는 데 적응하도록 돕고 있고, 수술은 수의사도 권하지 않고 시연 씨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시연 씨가 달래의 질병에 다소 초연하게 대응하는 이유는 스스로 가진 나름의 원칙 때문입니다.
치료 과정에서 고통이 수반되는 것보다는, 장애가 생겨도 곁에서 돕는 길을 택하겠다는 시연 씨. ‘앞으로 어떻게 달래를 돌봐주고 싶으냐’는 질문에도 그는 대단한 것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