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성차별이 한국에 없다고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아마 그런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할 겁니다."
가부장제에 따른 왜곡된 젠더 권력 불평등의 가장 큰 수혜자인 '서구의 백인 남성'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네덜란드의 남성해방 운동단체 '이맨시페이터' 설립자인 옌스 판트리흐트는 확고하게 "그렇다"고 대답하는 인물이다. 그는 30여 개국 600여 개 단체가 함께하는 남성과 젠더 정의를 위한 단체인 멘인게이지의 이사이기도 하다. 저서 '남성해방'의 국내 출간을 계기로 최근 한국을 찾았다. 그의 책은 네덜란드뿐 아니라 독일에서도 출간됐고 아랍어와 영어로도 번역됐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만난 그는 "젠더 정의(젠더 평등)는 남성을 자유롭게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책을 관통하는 판트리흐트의 핵심 메시지는 바로 '페미니즘이 남성에게도 이롭다'는 것, 가부장제는 여성을 억압함과 동시에 남성도 예외 없이 남성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이 존재한다. '남성은 자기 자존감이 무엇보다 가족에게 소득을 제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배우며 남성 반려자보다 소득이 높은 여성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갈수록 남성 우울증의 공통 원인이 되는 듯하다.(129쪽)'
해결책은 없을까. 그는 남성들도 자신 안의 여성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부드러운' '감성적인' '포용하는' '돌봄' 등의 속성은 흔히 여성성으로 구분되고 '딱딱한' '이성적인' '강인한' '일' 같은 것은 남성적인 것으로 취급되는데 이런 관념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가로막는다고 본다. 적극적으로 자신 안의 남성성을 발현하며 사회적 성취를 이루는 여성들은 늘어나고 있지만, 남성은 여전히 '남자답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압도돼 있다고 그는 분석한다.
한국 사회를 비롯해서 세계 곳곳에서 많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역차별'로 인식하고 있는 게 현실. 특히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 세대일수록 여성을 '공평한 룰'로 싸우는 경쟁자로 인식하면서 피해의식이 강화되는 형국이다. "그동안 남성들은 가부장제 시스템하에서 특권을 누려 왔기에 이를 벗어나 남성과 여성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을 역차별로 느끼는 겁니다. 그간 남성을 대한 것처럼 여성을 대하는 것 자체를 두고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건 충격적이죠."
'남성성 압박'에서 벗어나 해방된 남성의 삶은 어떨까. 그는 '관계 맺기'부터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주위 여성을 동등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대우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들과 더욱 깊게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여성을 성적 대상이나 잠재적 애인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므로, 동료, 가족 구성원, 반려자, 친구 등 다채로운 형태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성별을 막론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들과, 세상과도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더 깊이 이해하고, 가까우며, 더 잘 소통하고, 더욱 평등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