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없어지면 대안은…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도입해야"

입력
2023.06.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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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두 번의 합헌, 세 번째 결론은
무기수도 20년 수감 뒤엔 가석방 가능
"흉악범들 영구 격리해야" 여론 높아
대안으로 '절대적 종신형' 도입 목소리
"교화 가능성 없애면 안돼" 반대 의견도 
일각 "가석방·감형 더 어렵게 법 고쳐야"

편집자주

26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으면서, 한국은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됐다. 그러나 사형수 59명은 여전히 수감 생활 중이다. 헌법재판소는 사형제에 대해 두 차례 합헌 결정을 내린 뒤, 이르면 올해 세 번째 판단을 내놓을 예정이다. 한국일보는 헌재 결정을 앞두고 사형제를 둘러싼 양자택일의 소모적 공방을 지양하고 더 나은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봤다.

"저희 가족을 끔찍하게 죽인 김태현이 20년간 옥살이를 하면 세상 밖으로 나올 수도 있대요. 그때 출소하면 고작 40대 후반이에요. 저희도 보복당할 수 있고 무고한 피해자가 또 나올까 봐 두려워요. 이런 죄를 지었으면 교도소에서 평생 고통받고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게 맞지 않나요?"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의 피해자 유족 A씨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도입에 찬성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현행법에 따르면 20년 이상 복역한 무기수와 형기의 3분의 1을 넘긴 유기수가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했다면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고, 무기징역을 확정받은 김태현은 훗날 그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석방 여부는 ①교정시설별 가석방 예비심사 ②법무부 산하 가석방심사위원회의 적격심사 ③법무부 장관 허가를 거쳐 결정된다.

가석방을 통한 조기 출소가 끊이지 않는 추세는 유족의 우려를 더욱 키운다. 지난해 법무부가 발표한 교정통계 연보에 따르면, 2012~2021년 연평균 무기수 가석방 인원은 10.5명, 징역 10년 이상을 받았던 유기수의 가석방 인원은 149.4명에 달했다. 특히 가석방된 무기수는 2017년부터 두 자릿수로 뛰어올랐고, 2018년에는 무려 40명이 가석방됐다. 정확한 통계가 공개되지 않는 특별사면과 감형까지 합치면 조기 출소한 인원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감형은 선고받은 형량을 깎아주는 대통령 특권으로서 법무부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정해진다.

흉악범의 조기 출소는 또 다른 살인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생존 사형수 59명 가운데 4명은 과거에 살인죄로 복역하다 조기 출소한 뒤 또다시 사람을 죽였다. 강종갑(71)은 1999년 12월 동거녀를 살해해 무기수로 살다가 징역 20년으로 감형받아 출소한 지 7개월 만에 이복형수와 그의 어머니를 죽였다. 박광(60)은 1996년 7월 강도살인죄로 징역 15년을 받고 14년간 복역하다가 가석방된 지 2개월 만에 주점 종업원 3명을 살해했다. "국가가 흉악범으로부터 안전을 지켜달라"는 요구가 피해 유족과 잠재적 피해자인 일반 시민들을 중심으로 거세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절대적 종신형 도입해야 하나?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절대적 종신형)은 사형제가 폐지될 경우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꼽혀 왔다. 악질적 흉악범을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키면서도 오판으로 인한 생명권 박탈의 위험성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2007년 여성들을 성폭행하려다 4명을 살해하고 사형을 확정받은 오종근(85)을 대리해 사형제 위헌 청구까지 넣었던 이상갑 변호사는 "사형제가 없어지지 않더라도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함으로써 잘못에 상응하는 적절한 처벌을 내릴 수 있고, 유족을 포함한 피해자들과 시민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법원 역시 여러 판결을 통해 절대적 종신형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21년 여성 두 명을 살해한 최신종(33)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재판부는 "국회가 가석방 없는 종신형 형태의 무기징역 제도를 조속히 입법해 사실상 사형제가 폐지된 국가로 분류되는 대한민국에서 국민들을 안전하게 지켜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현행 법 체계에서 절대적 종신형까지 도입되면 판사의 선택지는 3가지(사형·절대적 종신형·가석방 있는 무기징역)로 늘어나고, 범죄의 경중을 보다 면밀히 따져 형량을 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절대적 종신형은 사회로 다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에 근거한 교화 가능성을 빼앗는다"(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실장)는 이유 때문이다. 실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절대적 종신형에 대해 "국가가 자유를 회복할 수 있는 희망을 수감자로부터 앗아간다면 인간 존엄성의 심장부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영국과 스위스 등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

절대적 종신형 도입을 반대하는 이들은 가석방과 감형은 유지하되 현행보다 강력한 무기징역을 사형의 대안으로 꼽는다. 한영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21년 발표한 '사형의 대체형벌로서 종신형의 도입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법원이 종신형을 선고하면서 30~50년 동안 가석방 불허기간을 정하고, 가석방되더라도 사망할 때까지 보호관찰을 받고 전자발찌를 착용하게 하는 등 조건을 건다면 사형을 실질적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가석방·감형 요건 강화하고 범죄 피해자 지원 늘려야"

절대적 종신형 도입 여부와 별개로 흉악범의 가석방과 감형과 관련한 법을 손질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도 있다. ①무기수 등의 가석방 최소 복역기간이 높아져야 하며 ②가석방 요건도 엄격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현 전 대한변협 회장은 "행정부가 모호한 기준으로 장기수와 무기수를 가석방 또는 감형하는 건 법원의 판결권을 침해하는 측면이 있다"며 "외부 전문가를 가석방 심사에 참여시키거나 심사위원회 명단과 논의 결과를 공개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가석방 최저 복역기간을 20년보다 낮게 정한 국가들도 적지 않기 때문에, 현행 제도로도 충분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범죄 피해자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수사 단계부터 사후 지원까지 유족을 포함한 피해자들이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승재현 한국 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가가 안전을 지키지 못해 살인 범죄가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경제적·정신적 피해를 충분히 보상할 의무가 있다"며 "흉악한 무기수를 가석방하지 않는 게 우선이지만, 만약 심사를 해야 한다면 유족 등에게 가석방에 관한 의견을 물어보고, 가석방 시 피해자들에게 통지하거나 강력한 보호관찰을 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다시 쓰는 사형제 리포트

<1> 죄와 벌, 그리고 59명의 사형수
<2> 사형제 폐지? 논쟁의 끝은
<3> 두 번의 합헌, 세 번째 결론은

박준규 기자
이정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