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지난해 6월 23일 알고 지내던 여성과 공범을 살해한 권재찬(54)에 대한 1심 선고가 열린 인천지법 324호 법정은 예상치 못한 결과에 술렁였다. 1심 재판부가 사형을 선고하기는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범 안인득 이후 2년 7개월 만이었다. 그만큼 사형 선고는 이제 법정에서 보기 힘든 장면이 돼버렸다.
한국일보가 만난 법조인들은 법원이 사형과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된 배경으로 사형 집행 중단을 꼽았다. 한국에서의 사형 집행은 1997년 12월 30일 흉악범 23명을 한꺼번에 형장의 이슬로 보낸 뒤 중단됐다. 사형 집행 중단 뒤 첫 4년간 1심 사형 선고는 연평균 4.75명으로 종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후반부터 사형 언도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지금은 1년에 한 차례 듣기도 어렵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1990년대만 해도 실제 집행을 염두에 두고 사형을 선고했지만 장기간 집행 중단으로 의미가 크게 퇴색했다"며 "생명권과 인권에 대한 고민이 법원 내에 자리 잡았다"고 전했다.
2010년대 징벌 체계 변화도 사형 선고 감소를 이끌었다.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는 2009년 살인죄 양형기준을 설정하며 법관 재량을 제한했다. ①범행 동기를 비난할 만하거나 ②중대범죄가 결합됐거나 ③극단적 인명경시 살인의 경우에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15년 헤어진 여자친구의 부모를 살해해 사형을 확정받은 장재진의 1심 판결문은 27쪽에 달했는데, 이는 유사 사건에서 10쪽을 전후한 경우가 많았던 과거와는 확연히 달랐다. 사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었던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했던 셈이다.
반면 사형 대신 다른 선택을 할 유인은 커졌다. 2010년 형법 개정으로 무기징역형 가석방 최저 복역 기간이 10년에서 20년으로, 감경은 '7년 이상 징역이나 금고'에서 '10년 이상 50년 이하 유기형'으로 상향됐다. 유기징역형의 상한선도 25년에서 50년으로 늘었다. 법무부 범죄백서에 따르면 1심에서 사형과 무기징역형의 연평균 선고 인원은 23.9명과 107.3명(1990년대)에서 7.3명과 89.5명(2000년대)을 거쳐 1.9명과 34.5명(2010년대)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20년 이상 장기수는 같은 기간 241.9명→548.5명→537명으로 늘어났다.
한영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무기징역이 사형을, 장기유기형이 무기징역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형량이 변화했다"고 분석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오판 가능성과 정치적 변화에 따른 집행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는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택함으로써 법관들이 마음의 짐을 조금 덜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형에 대한 법관들의 고민은 끝난 것일까. 법조인들은 "아니다"라고 고개를 저었다.①어떤 살인범에게 사형을 선고할지 ②사형을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으로 간주해도 될지는 여전히 법관 재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여성을 살해하고 공범까지 죽인 권재찬에게 사형을 선고한 1심 재판부는 "가석방과 사면 등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절대적 종신형'이 도입돼 있지 않으므로 무기징역형이 개인의 생명과 사회 안전 방어라는 측면에서 사형을 온전히 대체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 신고에 앙심을 품고 헤어진 여자친구의 가족을 살해한 이석준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재판부는 "문명국가에서 사람의 생명은 어떤 상황에서도 목적 자체로 다뤄야만 한다. 법관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의 효과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 사형을 선고할 수는 없다"고 했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앞으로도 사형 선고는 거의 없겠지만, 제도가 살아 있는 한 그 기준에 대한 논쟁은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에 대한 판사들의 생각도 조금씩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 다시 쓰는 사형제 리포트
<1> 죄와 벌, 그리고 59명의 사형수
<2> 사형제 폐지? 논쟁의 끝은
<3> 두 번의 합헌, 세 번째 결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