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당의 '변화'는 통했지만…어부지리 탁신이 정권 잡을 수도 [인터뷰]

입력
2023.05.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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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정치학자 티티난 퐁수디락 인터뷰
"사회 의제 군주제, 군부 개혁으로 변해"
전진당 연정구성 실패 시 푸어타이 기회
왕실모독죄 원점 돌리면 사회 혼란일 듯

“대부분 국가에서 야당의 선거 승리는 정권이 바뀌고 새 시대가 오는 것을 의미한다. 태국에선 다르다. 총선에서 개혁성향 전진당이 ‘변화’를 내걸고 승리했지만 과실은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 지지 정당이 가져갈 가능성이 있다. 이르면 오는 8월 새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상당한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

티티난 퐁수디락 태국 출랑롱꼰대 정치학과 교수는 19일 한국일보와의 서면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퐁수디락 교수는 태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학자로 꼽히고, 왕립 출랑롱꼰대는 태국 최고 명문 대학이다. 그는 정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소장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싱크탱크협의체 의장도 맡고 있다.

변화 않고 안주한 푸어타이 패배

퐁수디락 교수는 전진당이 하원 제1당이 된 것을 ‘정치적 지진’이라고 표현했다. 수도 방콕에서 청년층을 중심으로 피타 림짜른랏(42) 당대표가 인기를 끌었지만, 25년 역사의 친탁신계 전국 정당 푸어타이당의 맞수가 되긴 어렵다는 관측이 많았다.

탁신의 딸을 간판으로 내세운 푸어타이당은 창당 5년의 신생 정당에 무릎을 꿇었다. 퐁수디락 교수는 패인을 ‘정치적 안주’에서 찾았다. 포퓰리즘 정책을 앞세워 저소득층·농민의 지지를 받은 푸어타이당은 탁신이 집권한 2001년 이후 실시된 모든 선거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16세 이상 전 국민에게 1만 바트(약 39만 원) 지급 등 선심성 공약을 발표했다.

그러나 전략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퐁수디락 교수는 “70년 넘게 국민의 존경을 받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타계(2016년)와 쿠데타 군부에 맞선 반정부 시위(2020년) 이후 태국 사회 의제는 더 이상 도농·빈부 격차 해소가 아닌 군주제와 군부, 사법부 등의 구조 개혁으로 변했다”며 “과거 영광에 안주했던 푸어타이당은 바뀐 패러다임을 읽지 못했고 개혁과 변화를 열망하는 청년층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전진당에 뒤처졌다”고 설명했다.

탁신 사면 고리로 제3, 제4당 규합?

전진당이 새 총리를 배출하고 정권 교체의 주역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퐁수디락 교수는 낙관하지 않았다.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은 유권자이지만 최종 결과를 정하는 것은 유권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진당이 집권하려면 군부의 벽을 넘어야 한다.

전진당은 하원 500석 중 152석을 얻었지만 연립정부 구성 요건인 상하원 750석(군부가 임명한 상원 250석 포함) 중 과반(376석)을 확보하지 못해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피타 대표가 연일 야당 대표들을 만나고 있지만 선거 닷새가 지난 19일까지 모은 건 310석에 그친다. 기득권 정당들이 전진당 대표 공약인 ‘왕실모독죄 폐지’를 반대하는 탓이다.

퐁수디락 교수는 전진당 연정 구성 실패 후 141석을 확보한 푸어타이당이 어부지리로 정권을 잡는 시나리오를 언급했다. 태국에서는 총선 1위 정당이 연정을 꾸리지 못하면 2위 정당에 기회가 넘어간다.

“이 경우 푸어타이당이 부패 혐의를 받고 해외 도피 중인 탁신 사면을 조건으로 왕실모독죄에 부정적 의견을 가진 품차이타이당(70석), 팔랑쁘라차랏당(40석)을 통합할 가능성이 있다”고 퐁수디락 교수는 진단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변화를 꿈꿨던 젊은 유권자들의 반발이 불가피하다. 퐁수디락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연정 구성 과정은 정당 간 거래와 공작으로 가득 찰 것이다. 정치인들이 민심에 귀 기울이지 않거나 이전(쿠데타)처럼 유권자의 권리를 박탈하면 어떻게 될까. 투표용지를 통해 적극적으로 변화를 택한 사람들은 더 이상 수동적으로 가만히 앉아 있진 않을 것이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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