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일본 히로시마에서 어제 역대 한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원폭 피해 동포들과 면담했다. 내일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함께 히로시마 평화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찾는다. 한일 정상의 첫 공동 참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G7 정상들도 어제 첫 공식 일정으로 평화공원 내 원폭자료관을 찾았다. 이곳엔 조선인 피폭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강제징용 관련 사료가 전시돼 있다.
1945년 미국의 대일 원자폭탄 투하 이후 78년간 잊힌 거나 다름없이 살아온 한인 피해자의 존재가 한미일 당사국과 국제사회의 조명을 받고 있어 의미가 깊다. 한일 정상의 위령비 참배엔 당사자들 호응도 크다. 히로시마를 기념 방문한 국내 피해자들은 그제 기자회견에서 "늦었지만 기쁘다"고 밝혔고, 재일동포단체 민단도 "기원하고 기원했던 일"이라고 반겼다.
히로시마·나가사키의 한국인 원폭 피해자 7만 명 가운데 겨우 생존한 3만 명은 부상과 후유증, 피폭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고된 삶을 살아왔다. 특히 전후 귀국한 2만여 명은 1957년 일본 원호법 시행에도 외국인이란 이유로 수십 년간 의료비 지원을 받지 못했다. 오랜 현지 소송 끝에 일부나마 지원을 받게 된 게 2003년, 지원액 제한을 없앤 게 2015년이었다. 한국에선 2016년에야 피해자 지원 특별법이 제정됐다. 일본에 남은 이들은 재일동포와 피폭자의 이중차별에 시달렸다.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 원폭 공격을 감행한 미국, 자국민을 충분히 보살피지 못한 한국까지, 원폭 피해자 비극엔 국가의 책임이 크다. 사과 요구를 외면하는 미국, 가해자 이미지를 벗으려 원폭 피해를 부각한다는 의심을 받는 일본 모두 과거사에 진지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합당한 지원에 나서는 후속 작업도 따라야 한다. 고령의 생존 피해자는 물론이고 자녀 세대의 건강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전향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