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유착의 역사로 얼룩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탈바꿈하는 혁신안을 내놓았다. 설립 당시 이름이었던 한국경제인협회로 55년 만에 간판도 바꿔 단다. 방향성은 좋은데, 혁신의 알맹이는 아직 탄탄하지 못하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과거와 확실히 단절하고 제대로 환골탈태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전경련이 어제 내놓은 혁신안의 핵심은 경제∙기업 연구기관인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통합해 조사연구 기능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윤리헌장을 만들고 윤리경영위원회를 설치하는 한편, 사무국 중심으로 정부와의 관계에 치중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대국민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은 “과거의 역할과 관행을 통렬히 반성한다”고 했다.
하지만 발표된 혁신안만으로는 쇄신을 장담하기 어렵다. 단순히 한경연을 흡수한다고 싱크탱크로서의 없던 경쟁력이 살아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윤리헌장이나 위원회가 없어서 정경유착에 휘둘린 것도 아니다. 현재 11개사로 구성된 회장단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은 자칫 몸집 키우기를 위한 포석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도 한다.
최근 전경련의 정부∙여당과의 밀착 행보도 우려스럽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 방미 경제사절단을 직접 꾸리고 행사를 주관했고, 15일에는 국민의힘 지도부를 초청해 정책간담회를 열었다. 입지를 강화하려는 노력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지만, 쇄신보다는 위상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시선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진짜 혁신은 간판이 아니라 내용물을 바꿀 때 가능하다. 미중 반도체 패권 전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하는 지금은 통찰력 있는 경제산업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단순히 세금 깎아달라, 규제 풀어달라 식의 재계 요구사항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치열한 전쟁에서 살아남고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을지 방향성을 제시할 싱크탱크가 절실하다. 위상은 권력과의 관계와 몸집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런 실질적인 역할에서 나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