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광주로 향했던 사진기자들이 있습니다. 광주의 참상을 목격했지만 '보도지침'이라는 이름의 검열 아래 본 것과 찍은 것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습니다. 부끄러움에 뒤척이던 밤, 한국일보 사진기자 박태홍은 수첩에 이렇게 적어 내려갑니다.
"누굴 위한 투쟁이고 누굴 위한 방어인지? 광주의 사건은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 말 없는 시체가 썩어가고 있으니 더욱더 하다. 역사의 증인이란 난 자신이 없어진다."
보고도 말하지 못한 기억은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사진은 그렇게 오랫동안 빛이 닿지 않는 곳에 처박혔고, 꼬박 38년이 지난 2018년에야 비로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때 그 사진기자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부끄러워 보지 못했던 사진을 마주했습니다. 뒤늦은 후회, 뒤늦은 사과. 노기자들은 사진을 보며 아이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43주년을 맞은 올해 h알파가 비공개 사진 1,868장에 담긴 광주의 시간을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이 죄 없는 젊은이들과 학생을 무자비하게 총을 쏴서 죽인다는 것은 같은 민족으로서 같은 형제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계엄군이 어찌하여 이렇게 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박태홍 전 한국일보 사진기자)
"교련복 입은 학생들의 시신 여럿이 그 시체 무더기 속에 모여 있었어요. 그게 제일 가슴 아팠습니다."(한융 전 한국일보 사진기자)
1980년 5월 21일 밤 박태홍 전 한국일보 사진기자는 광주에 도착했습니다. 신군부의 비상계엄 조치가 전국으로 확대된 지 3일 만이었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 금남로 일대에서 공수부대가 시위대에 집단 사격을 가해 54명이 숨졌습니다.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휘두르는 폭력에는 거리낌도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도청 뜰엔 관에 넣지도 못한 시신이 널브러졌고, 적십자병원에선 사망자 명단이 한쪽 벽을 빼곡히 뒤덮었습니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순찰을 하고 프락치로 의심되는 이들을 색출해 내던 이들은 시민을 지키는 ‘시민군’이었으나 훗날 ‘폭도’의 누명을 썼습니다. 그러나 기자들이 그곳에서 맞닥뜨린 것은 결코 '폭도'가 아닌 그저 민주화를 열망하던 '시민'이었습니다. 계엄군의 총탄이 광주를 찢어 놓았지만, 그래도 광주는 하나였습니다.
"당시 신문에서 폭도라고, 간첩이라고도 했지만, 그들은 정말 광주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분들입니다. 시민들도 젊은 학생들에게 물과 주먹밥을 갖다주며 자신의 위치에서 최대한으로 도왔습니다. 내 형제들이 총에 맞고 칼에 찔리고 곤봉으로 머리가 터지는데 흥분하지 않고 동조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로 생각합니다. 광주 시민은 모두 한 마음이죠."(박)
처음 광주로 향할 때만 해도 실은 욕심을 냈습니다. 이번 취재에서 잘만 하면 퓰리처 같은 큰 상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곧 알게 되었습니다. 외신 기자들이 시민군의 적극적인 취재 지원을 받은 것과 달리, 당시 내신 기자들은 시민군 앞에서 마음 놓고 카메라를 꺼낼 수도 없었습니다. 국내 언론에 대한 시민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광주의 현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언론에 분노한 시민들은 MBC에 불을 지르며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현장에서 박 전 기자는 늘 붉은 글씨로 쓴 신원확인용 메모를 가슴에 품고 다녔습니다. 잘못될 경우를 대비해서입니다. 이제 와서는, 그마저도 '부끄러움'으로 남았습니다.
"그 당시엔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당시 정말 '사즉생' 정신으로 취재했어야 합니다. 그때 광주의 젊은이 중 자기 목숨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었겠습니다. 다만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피를 흘린 것입니다. 저는 그러지 못한 게 늘 후회스럽습니다. 그 끔찍한 참상을 보고 사실대로 모두 기록하지 못한 게, 사진기자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먼저 가신 영령들에게 다시 한번 사죄드리고 싶습니다."
※h알파 유튜브 영상 보러 가기(https://bit.ly/3RrDmye)
연출 이수연/ 구성 제선영/ 진행·취재 한소범/ 촬영 이수연·최희정·안재용/ 영상편집 이수연·박고은/ CG 전세희/ 인턴PD 김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