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이 멈춘 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시간을 뜻하는 제로백 실험을 앞두고 인스트럭터(강사)로 나선 프랑크 비엘라는 꼼꼼하게 설명했다. 서킷 위에 차량을 세워두고 한껏 긴장하고 있던 기자와 달리 그는 여유만만했다. '극한 레이스'로 불리는 르망 24 대회에서 세 차례 우승한 그는 아우디의 전기 스포츠카 RS 이트론 GT의 성능을 믿고 힘껏 도전해보라고 권했다. 제로백 테스트(부스트) 모드 설정 뒤 그가 알려준 대로 브레이크에서 발을 들자 차는 100m 육상 선수가 출발점을 박차듯 튀어나갔다. 계기판에 찍힌 제로백은 3.0초. 기본 사양에 나온 3.3초보다도 짧았다. 입이 '떡' 벌어진 기자를 본 비엘라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독일 뮌헨 북쪽의 작은 도시 노이부르크에 위치한 아우디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는 RS 이트론 GT의 성능을 꼼꼼하게 살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총길이 약 3㎞의 굽이진 코스에서 장애물 사이를 지그재그로 빠져나가는 슬라럼으로 차량의 회전 반응을 따졌고 급제동 실험에서는 "차량이 부서져도 된다는 생각으로 브레이크를 꽉 밟으라"는 비엘라의 지시를 따랐다. 2톤(t)이 넘는 차체 무게(2,355kg), 그리고 전기차라는 특성이 무색하게 스포츠카라는 이름에 걸맞은 기능을 대부분 완벽하게 해놓았다. 낮은 무게 중심에 후륜 구동 모터가 활성화돼 묵직하고 강력한 주행 질감을 선보였다.
RS 이트론 GT의 질주 쾌감을 느끼기엔 역시나 아우토반이 안성맞춤이었다. 서킷을 빠져나와 노이부르크~네카르줄름을 잇는 210㎞를 내달리면서 차량의 성능을 체험했다. 지난해 같은 차량으로 경기 평택시에서 서울까지 약 55㎞를 이동해본 경험과는 차원이 달랐다. 구간 단속이나 과속방지턱이 많은 한국 도로 사정보다는 아우토반 내 속도 제한이 없는 구간에서 이 차량의 매력은 폭발했다. 매끈한 도로 위에서 뻥 뚫린 구간을 맞아 마음껏 가속 페달을 밟아 보니 눈 깜짝할 새 시속 200㎞를 넘겼다.
'얼마나 더 빨리 달릴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속도를 조금 더 올리니 시속 250㎞를 거뜬히 넘겼다. 서둘러 속도를 줄이긴 했지만 시속 250㎞를 넘겨도 바퀴가 도로에 '착' 달라붙듯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었다. '드라이빙 모드'→'다이내믹 모드'로 바꿔 달릴 땐 스포츠카 특유의 출력이 발휘되며 힘 있는 질주를 온몸으로 느꼈다. 회생 제동에 따른 어색한 느낌은 거의 없었고 공사 구간 등 속도를 줄여야 하는 위험 요인에서도 재빨리 대응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휴게소나 도심에서 RS 이트론 GT를 유심히 살피는 이들이 많은 걸 보니 독일에서도 꽤나 관심도가 높은 차량으로 보인다.
다만 1회 충전 시 주행 거리는 아쉽다. 국내 기준 공인 주행 거리는 336㎞지만 고속도로 등에서 질주할 때는 이에 미치지 못한다. 이날 완전 충전 뒤 210㎞를 달렸는데 네카르줄름에 도착했을 때 계기판에 표기된 주행 가능 거리는 65㎞였다. 한국 기준으로는 서울시청에서 완충 후 대구광역시청이나 광주광역시청까지만 갈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선다. 독일 현지 급속충전시설인 '아이오니티' 기준으로 1킬로와트시(㎾h) 충전 시 0.75유로(약 1,100원)가 드는데, 93.4㎾h 용량의 리튬 이온 배터리를 완충할 경우 우리 돈으로 10만 원 안팎의 비용이 든다는 점도 부담이다.
그럼에도 탄탄한 차체에서 오는 안정감과 전기차 특유의 정숙함, 폭발적 성능을 모두 담은 차임에는 분명하다. 오밀조밀한 조직력을 갖추고 결정적 순간에 공격력을 뿜어내는 '전통 강호' 독일 축구대표팀에 이 차를 대입하면 딱이다. 물론 전차군단 독일이 한국과 A매치에서 유독 약했던 것처럼 한국 시장서 유독 약한 모습까지 빼닮은 점이 안타깝지만 아우디와의 독일 현지 만남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됐다. 자동차든 축구든, 독일은 언제 정상에 서더라도 어색한 나라가 아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