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을 재현한다는 것

입력
2023.05.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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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가해자의 시선을 따르지 않는 재현, 어떻게 가능할까

지난 3월 초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을 둘러싼 논쟁이 두 달여가 지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일단은 반갑다. 최초의 충격 이후 제기된 다양한 의제들, 예컨대 지역 소멸 시대 지역으로 간 사이비종교나 성폭력의 재현 등은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묵직한 화두들이다. 나 또한 이 지면을 통해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범죄자 남성의 공범이 되는 여성들에 대해 쓴 바 있다.

그중에서도 이 다큐멘터리의 성폭력 재현 방식에 대해서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개 직후부터 제기된 이 비판은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요약된다. 선정성을 문제 삼는 입장과 성폭력 피해 재현의 적절성을 묻는 입장이 그것이다. 논자에 따라서 두 가지 입장이 섞여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제작팀은 이 비판을 전자, 즉 재현 수위의 선정성에 대한 문제제기로만 이해하는 것 같다. '나는 신이다'의 연출자 조성현 PD는 재현 수위에 대해 고민이 많았지만 "있는 그대로 명백하게 보여주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실제 벌어진 추악함의 10분의 1 정도만 담은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문제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란 없다는 것이다. 촬영과 편집을 거쳐 우리 앞에 당도한 다큐멘터리는 이미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여러 이미지와 사운드가 조합된 영상물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영상물의 순간순간은 대단히 공들여 취사선택된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 찍었다는 주장의 반복이 아니라 그렇게 만든 영상물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나는 신이다'의 인터뷰 사용법

'나는 신이다'는 8회로 구성된 시리즈물로 가장 큰 화제가 된 것은 JMS를 다룬 1, 2, 3회다. 다른 회차도 비슷하지만 특히 JMS편은 관계자들의 인터뷰에 전적으로 의존한 전개가 인상적이다. 한국의 방송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voice over narration,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 화자의 목소리로 표현되는 해설)이 전혀 없고 오로지 관계자들의 인터뷰, 그중에서도 교주 성폭력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전개는 연출자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었다고 자신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다큐의 모든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증언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라는 자막이 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연출자의 개입을 최소화했다는 무언의 주장이다.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은 다큐멘터리의 주장을 펼치는 가장 손쉬운 방식이며 모든 상황을 전지적 시점에서 정리하는 '신의 목소리'라는 이유로 비판받아왔다. 그렇지만 한국의 방송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을 선호한다. 인터뷰나 효과음, 환경음 등 영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운드까지 완성도를 신경 쓸 만큼 시간과 제작비가 충분하지 못한 까닭이다. '나는 신이다'는 MBC가 기획, 제작했지만 넷플릭스에서 제작비 전액을 투자하고 2년여의 제작 기간을 가질 수 있었던 예외적인 경우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인터뷰 영상이 경험과 고통을 정말 있는 그대로 전달할까? 그렇지 않다. 피해자의 말이 피해자의 고통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듣는 사람이 그 고통을 이해하고 전달받아야 한다. 고통을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는 그 말이 왜곡되는 겹겹의 장치들이 있다. 영상물의 경우에는 인터뷰의 재현 방식이 그중 한 장치다.

'나는 신이다'에서 피해자들의 인터뷰는 성폭력을 당한 당시 정황을 길고 자세하게 묘사하는 데 할애된다. 또한 이 인터뷰들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피해자들의 실루엣 그리고 재연 장면과 함께 제시된다. 재연 장면은 대역들이 등장하며 상당히 자세하고도 공들여 연출되었다. 문제는 성폭력 당시의 상황이 교주 대역의 남성 연기자를 통해 보여진다는 데 있다. 그가 짓는 음습하고도 기대에 찬 얼굴과 시선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의 시선, 즉 가해자의 시선으로 성폭력 피해 상황을 보도록 만든다. 속옷이나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이나 여성들의 나체 재현 방식 또한 마찬가지다. 옷을 벗은 여성들을 재현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카메라의 시선이 그 여성들을 바라보는 가해자의 시선과 다를 바 없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 장면들은 기괴한 효과음과 함께 보여진다. 피해의 고통이 가해의 은밀한 쾌락으로 전도되는 순간이다.

많은 여성들이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불편함과 괴로움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폭력 피해 경험이나 그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시청자의 경우 성폭력 가해자의 시선으로 피해자의 자세한 묘사를 들으면서 그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성폭력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려고 하면 할수록 가해자의 시선을 경유하게 되는 이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에 대한 보다 치열하고도 창조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나는 연출자와 제작팀에 영화 '소공녀'의 연출자 전고운 감독이 2008년에 만들고 그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수상한 단편영화 '내게 사랑은 너무 써'를 추천하고 싶다. 이 영화는 고3 여학생 목련이 고시원에서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가진 뒤 남자친구가 잠시 나간 사이 옆방 거주자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감독은 성폭력 장면은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성관계와 성폭력이 어떻게 다른지 명료하게 그려낸다.

장르물로의 '나는 신이다'

한국에서 '나는 신이다'는 MBC가 제작했다는 점과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는 사이비 종교 집단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 고발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글로벌 시청자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에게는 계속 스트리밍되는 수많은 시리즈 중 추천 시스템에 얻어걸리면 시도해 볼 만한 콘텐츠일 것이다. 이런 시스템을 갖춘 넷플릭스에서 시사 다큐멘터리는 인기를 얻기 어렵다. 시사 다큐멘터리는 동시대 대중들이 집단적으로 관심을 가질 만한 사회 이슈를 주로 다루지만 넷플릭스에서는 언제 봐도 상관없는, 취향 다른 개개의 소비자에게 소구하는 다큐멘터리가 인기를 얻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를 내걸고 있는 작품들이 유독 범죄 실화에 기반한 경우가 다수인 이유는 이 때문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의 '나는 신이다'는 범죄 실화에 바탕하고 있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장르물의 서사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특히 JMS편은 피해자 메이플과 추적자 김도형 교수가 중심인물인 성범죄 수사물과 복수극이라고 할 만하다. 인물과 인터뷰, 정보 및 재연 장면 그리고 사운드는 이 장르의 서사에 따라 정교하고 섬세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장르가 대개 그렇듯 주인공은 추적자 남성들이다. 피해자들은 초반부에 많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한정적이다. 성폭력 피해를 길고 자세하게 드러내는 정보 제공자이자 얼굴도 드러낼 수 없는 다소 무력한 피해자. 시청자들로 하여금 '일단 봐 볼까?'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흥밋거리의 제공자이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체로는 그려지지 않는다.

반면 김도형 교수를 비롯한 남성들의 추적은 박진감 넘치게 그려진다. 온 아시아를 돌아다니며 교주 정명석을 쫓는 그들의 행적은 아시아의 도시들을 위에서 조망하는 부감(俯瞰) 쇼트들과 당사자의 직접 재연으로 활력이 넘친다. 2화와 3화는 이들과 교주 정명석을 비롯한 JMS 남성 집단 간 승부가 이어지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연출자와 제작팀이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는 장면들이다.

이 남성들의 희생과 고난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젠더화된 폭력으로의 성폭력을 재현할 때 누구의 경험과 고통을 중심에 놓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싶은 것이다.

지난 4월 26일 한국여성민우회 주최로 열린 '나는 신이다는 다르지 않았다: 재현의 윤리와 저널리즘' 라운드테이블에서 문화평론가 손희정 경희대 교수는 이 시리즈가 화제가 된 이유로 문제가 있는 콘텐츠이지만 그 와중에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시청자를 들었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최근 증대된 성폭력 피해에 대한 문제의식이 가해자의 시선에 기댄 콘텐츠에서도 피해자의 고통을 들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제는 좀 더 나은 성폭력 재현이 나올 때도 되었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인 이한 작가와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