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성차별·성희롱 시정 신청제도 1년 됐지만... 여성은 여전히 '미스김'

입력
2023.05.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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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상 성차별 등 시정신청 제도 시행 1년
노동위 구제 가능하지만 인지도·실제 처벌 ↓
"고무장갑 빼고 설거지" "여성은 계약직" 차별 여전
"홍보, 행정에 적극 나서야 '그림의 떡' 안 돼"

"60대 대표가 본인이 마신 커피잔 등 설거지를 시키는데, 고무장갑을 끼지 말고 맨손으로 정성껏 닦으래요. 회식 때 꼭 술을 따르게 하고, 자리는 꼭 성별을 섞어 앉혀요."

"사장의 성희롱을 신고했더니, 강제휴직과 부당 해고를 당했습니다. 사장은 '사업에 막대한 손해를 입혔으니 4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협박도 했습니다."

"수습기간 후 정규직 전환 조건으로 입사했습니다. 그러나 사장은 수습기간 종료 후 제가 여성이라 육아휴직 사용 가능성이 있어 계약직으로만 일할 수 있다고 합니다."

18일 서울 민주노총 본부 앞에 여성 직장인들이 입사 과정에서 겪은 성차별, 성희롱 피해 사례가 적힌 천막이 나부꼈다. 고용상 성차별과 직장 내 성희롱 피해 노동자를 구제하기 위해 마련된 '고용상 성차별 등 시정신청 제도(시정신청 제도)' 시행 1년을 맞아 진행된 퍼포먼스였다.

"성차별 시정신청 제도, 인지도 낮아... '그림의 떡'"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이날 '2023년 우리회사 미스김, 고용상 성차별 등 시정신청 법시행 1년 기자회견'을 열고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6.6%만이 시정 신청 제도를 알고 있었고, 실제 활용한 비율은 3.4%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박은하 노무사는 "적극적 시정, 배상까지 요구할 수 있는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직장인들은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낮은 인지도가 낮은 활용도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5월 19일 실시된 이 제도는 노동자가 △채용, 임금, 승진 등에서 성차별을 당한 경우 △사업주가 성차별 피해 노동자에게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 △사업주가 성희롱을 신고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줄 경우 노동위원회에 시정신청을 할 수 있게 한 것으로, 성차별·성희롱이 인정될 경우 차별 중지, 배상 등 적극적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시정신청을 해도 실제 처벌까지 이뤄지는 경우가 적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됐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노동위원회가 성차별 시정신청(12건)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린 경우는 없었고, 성희롱 조치의무 위반 등의 시정신청(29건) 중 27.6%(8건)에만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성희롱 피해자 B씨는 "고용노동부 퇴직공무원 출신 노무사 2명에게 성희롱·스토킹·폭행·고소를 당했는데, 노동위는 이를 알면서도 4개월 만에 결론을 냈다"고 토로했다.

직장에서의 성차별도 여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갑질119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성 응답자(435명)들은 성별 때문에 △모집·채용 차별(41.8%) △동일 노동 임금 차등지급(52.2%) △교육·배치·승진 차별(47.1%) △혼인·임신·출산을 퇴직 사유로 예정하는 계약 체결(42.3%)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는 남성 응답자의 경험 비율보다 1.7~1.8배가량 많은 수치로, 남성 정규직과 여성 비정규직을 놓고 비교하면 여성 비정규직의 차별 경험 비율이 2배 이상 높았다.

"제도 홍보, 행정 적극 나서야... 공익위원 성비 균형 필요"

직장갑질119의 여수진 노무사는 "여성 직원을 '미스김'이라 부르고, 은행권에서는 채용 성비를 조작하는 등 성차별, 성희롱이 (여전히)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면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했다.

노동위원회의 차별시정위원회 차별시정담당 공익위원의 성비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재 176명의 공익위원 중 남성이 128명(72.7%)으로 압도적이고, 부산·울산은 여성 위원이 각 1명뿐이다. 김세정 노무사는 "공익위원 성인지 감수성 제고, 심문회의 등에서의 2차 피해 방지 방안 마련, 시정신청 대상 범위 확대 등 제도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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