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17일, 서울 강남의 한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30대 남성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가해자는 화장실을 이용한 다른 남성들은 놔둔 채 여성을 표적 삼았다. 한국 사회에 ‘혐오범죄’ 논쟁을 촉발한 사건이다.
7년이 지난 지금, 여성들은 구조적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대답은 ‘아니오’다. 17일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7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200명의 여성들은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목숨을 잃는 사건은 여전하다”고 외쳤다.
이들은 여성 대상 범죄와 혐오가 계속되는 현실에 목소리를 높였다. 오은선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텔레그렘 성착취 사건, 신당역 살인사건, 인하대 강간 살인사건 등은 이 사회가 여성을 어떤 존재로 취급하는지 보여준다”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더 단단히 뭉칠 거라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추모제 참석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한 1년을 ‘퇴행의 시대’라고 평가하며, 정부의 여성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지아 서울여성회 부회장은 “정부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동안 피해자를 위한 예산은 줄고 여성 안전은 방기되고 있다”며 “국가는 시민의 안전을 보호하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역할을 져버렸고 여성이 가장 먼저 타깃이 됐다”고 꼬집었다. 현장에선 “누구도 우리의 전진을 막을 수 없다” “살아남은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는 외침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이날 집회는 ‘백래시(사회 변화에 대한 반발심리)’를 극복해 나가겠다는 결심을 적은 포스트잇을 ‘바꾼다’라는 글자 모양에 맞게 붙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지난해 9월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때도 추모 빈소를 방문했다는 최모(28)씨는 “7년이 지났는데도 여성 혐오가 만연한 현실에 답답하지만, 같은 뜻으로 연대하는 여성들과 함께 하니 든든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추모 집회가 열린 장소와 맞닿은 강남역 9번 출구 앞에선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남성 단체의 맞불집회가 열려 한때 긴장감이 돌았으나 큰 충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