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내내 생일인 섬이 있다. 265개의 크고 작은 섬이 있는 전남 완도군의 '생일도(生日島)'다. 섬의 입구인 서성항에 들어서면 높이 5.3m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생일케이크 조형물이 제일 먼저 관광객을 맞는다. 해안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생일섬길에는 돌탑으로 쌓은 30여 개의 케이크가 축하 인사를 건넨다. 구름이 머무는 백운산과 상서로운 학이 산다는 학서암, 하늘이 금빛으로 물드는 노을공원 등 비경이 선물이다. 올해부터는 생일에 섬을 찾는 이들에게는 지역특산물인 미역과 다시마까지 듬뿍 안겨준다. 이처럼 섬을 찾는 이들을 따뜻하게 환대하는 주민들의 마음 씀씀이가 갓 태어난 아기처럼 순수해 '생일도'라 부른다.
지난 11일 오후 전남 완도군 약산면(약산도) 당목항에서 170톤급 카페리를 타고 섬을 향해 출발했다. 25분가량 걸리는 뱃길 주변은 온통 섬이다. 섬과 섬 사이엔 전복과 다시마, 미역 양식시설이 빼곡하다. 섬이 속한 생일면은 2개의 유인도와 12개의 무인도가 있다. 전남 완도군 12개 읍·면 중 가장 작다. 면적 15.1㎢에 800여 명이 거주한다. 이 중 85%인 690명이 생일도에 모여 산다. 동쪽으로 평일도, 남서쪽에는 서편제로 유명한 청산도가, 서쪽엔 신지도와 완도 본섬이 있다.
생일도는 작지만 풍요롭다. 섬이 속한 완도군은 전국 다시마 생산량의 78%, 톳 75%, 매생이 61%, 미역 27%, 전복 80%, 넙치(광어) 36%를 차지하고 있다. 생일도 주민도 대부분 수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생일도 곳곳에 광어 양식장과 전복 치패 종묘장이 자리해 있다. 섬 도로변에는 파란 그물망이 덮인 다시마밭(다시마 건조장)을 쉽게 볼 수 있다.
물이 부족한 여느 섬과 달리 생일도는 용수 공급이 원활하다. 해발 483m의 백운산에서 형성된 소하천이 사방으로 뻗어 있는 덕분이다. 완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백운산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훌륭하지만 주민들에게는 식수와 용수를 공급해 주는 고마운 산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로 10~20년 전까지 백운산 기슭 다랑이논에서 벼를 재배하기도 했다. 서말순 생일면장은 "생일도는 백운산이 있어 완도군 12개 읍·면 중 지난해 가뭄 때 유일하게 제한급수를 하지 않은 섬"이라며 "가뭄이 심했던 최근에는 이웃 섬인 금일도에 하루 300톤의 용수를 지원했다"고 말했다.
비경도 가득하다. 서성항의 명물 생일송에서부터 백운산 중턱에 있는 학서암, 지리산 반야봉 낙조보다 멋진 석양을 볼 수 있는 노을공원, 쪽빛바다를 둥글게 품은 금곡해수욕장, 울창한 동백숲, 9만여㎡에 달하는 구실잣밤나무 군락지, 파도에 닳아 반질반질한 몽돌이 깔린 용출갯돌밭, 부속섬인 덕우도까지 생일도 8경이 펼쳐진다. 봄과 여름에는 가족 단위 피서객이 조개껍데기가 부서져 쌓인 백사장이 있는 금곡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고, 가을에는 구실잣밤 줍기 체험에 참여할 수 있는 등 다양하게 섬을 즐길 수 있다. 백운산 정상에서는 맑은 날 제주도가 보일 정도로 해양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매년 해맞이 행사가 열릴 정도로 일출 명소로 유명하다.
비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안절벽을 따라 '생일섬길'도 조성돼 있다. 왕복 2~3시간인 금곡리-용출리 코스를 비롯, 총연장 14㎞의 둘레길은 오감을 자극한다. 아까시꽃과 때죽나무꽃, 밤꽃의 향이 진동하고, 생달나무와 동백나무가 줄지어 숲 터널을 이룬다. 길을 걷다 보면 염소와 꿩, 노루 등 야생 동물도 만날 수 있다. 길목에는 돌로 쌓은 다양한 형태의 케이크가 재미를 더해준다. 걷다가 힘들 때는 용출리 몽돌해변에서 빼어난 해안 경관을 조망하며 멍때리기 좋은 너덜겅(돌이 많이 흩어져 있는 비탈)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듣는 것도 좋다. 크고 작은 바위에 물길이 흘러내려 생성된 암괴류도 이색적인 풍경을 만든다.
전남도와 완도군은 생일도의 지명과 자원을 활용해 본격 관광섬으로 개발하고 있다. 전남도는 2016년 '가고 싶은 섬'으로 생일도를 지정해 관문항과 탐방로 등을 정비했다. 약산면 당목항에서 출발해 생일도 서성항에 도착하는 카페리가 하루 편도 7회 운항한다. 한 번에 차량 22대, 승객 180명을 태울 수 있다. 배로 25분이면 도착하는 데다 섬에 차를 가져갈 수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다. 주민들은 "관문항이 생기면서 관광객도 늘어나고, 주민들도 편리해졌다"며 "다만 병원이나 약국이 없기 때문에 섬에 들어오기 전에 상비약을 준비하는 게 좋다"고 귀띔했다.
생일에 섬을 찾으면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관광상품도 곳곳에 마련했다. 2018년 백운산 탐방로에 일 년 열두 달의 탄생석과 탄생화 등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세웠다. 십이지신상 석조물도 설치했다. 생일섬길에 놓인 30개가량의 생일케이크 돌탑도 이때 생겼다. 올해부터 관광객이 신청하면 서성항 대합실 2층 전광판에 생일축하 문구가 나오는 이벤트도 한다. 서말순 면장은 "소소하지만 방문객들에게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다양한 생일 이벤트를 기획했다"며 "주민과 방문객이 하나가 돼 1년 내내 생일처럼 새로운 날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숙박시설도 넉넉하다. 섬에는 생일섬길과 이어져 있는 이엘리조트, 금곡해수욕장에 인접한 골드밸리리조트, 마을기업인 금곡펜션 등 20여 곳의 숙박시설이 있다. 생일도를 찾는 이들이 증가하면서 숙박업을 하는 주민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섬에서 민박업을 하는 한 주민은 "1인 관광객부터 가족 단위 관광객까지 두루 즐길 수 있는 숙박시설이 있다"며 "작지만 한적하게 섬을 즐기려는 이들은 오래 머무른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한때 주춤했던 관광객은 2021년 6만653명, 지난해 6만2,552명으로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섬진흥원은 가정의 달을 맞아 '5월, 이달의 섬'에 생일도를 선정했다. 지난해엔 한국섬진흥원과 행정안전부의 '찾아가고 싶은 봄 섬'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오동호 한국섬진흥원장은 "생일도의 이름처럼 이곳을 방문하는 순간만이라도 생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 것"이라며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소중한 추억을 쌓기에 알맞은 힐링 명소가 될 것"이라고 추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