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흥없는 일상을 일시정지할때.. 모든 것이 시가 된다

입력
2023.05.19 07:00
15면
이효영 시인 '당신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 중 빛나는 하나를 골라내기란 어렵지요.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으로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송지현 작가가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독서 자세 추구'를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일보>를 통해 책을 추천합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읽은 시는 주로 사랑에 관한 것들이었다. 나는 시인들이 말하는 사랑에 밑줄 치고, 페이지를 오려 방에 붙였으며, 애인에게 선물하기까지 했다. 스무 살 새내기, 시 수업은 전공 필수였다. 서점에 가서 다음 주까지 읽어오라는 시집을 펼쳤다.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당황한 나는 동기들에게 시 읽는 방법에 대해 물어보았고, 그러자 누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냥 왠지 모르게 좋은 페이지의 귀퉁이를 접어두고 나중에 다시 읽어봐.

그렇게 시를 읽는 재미에 빠져 들었다. 사랑처럼 강렬한 이미지와 감정만이 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왠지 모르게 좋은 것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곤란한 건 시를 써야 할 때였다. 도대체 어떤 게 시가 되는 걸까?

하루 동안 우리에겐 수없이 많은 이미지가 쏟아진다. 어떤 것은 아름답게 느껴지고 어떤 것은 추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미지가 항상 무언가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익숙한 풍경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는다.

나는 오늘 아침 암막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가느다란 빛을 보았을 것이다. 컵에 물을 받았을 때 담겨있던 얼음은 작게 흔들리며 물 표면에 파동을 일으켰을 것이다.

나는 그 모든 순간을 분명히 보았을 테지만 보지 못했다.

우리는 때로 풍경을 보고서도 그게 풍경이었는지조차 모른다.

시가 된 일상들이 여기 있다. 이효영 시인의 시집 ‘당신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에는

"빈 식탁/ 씻고 나서 / 자연스럽게 벗은/ 팬티 올려놓다/ 흰 식탁보에 빨간 팬티/ 있다 그랬다 의외로/ 익숙하다 씻고 나서/ 비위생적이고/ 반사회적이고/ 그랬다 익숙하다" (14 페이지 ‘가족’ 중)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어쩌면 아무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순간이 포착되어 있다. 익숙한 것들, 이를테면 ‘가족’, ‘에어팟’, ‘블루클럽’, 심지어는 ‘짱구는 못 말려’까지 우리가 매일 보는 이미지들이 가득 담겨있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일상을, 매일같이 스쳐 지나가서 우리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는 것들을 오래도록 지켜보는 사람이다. 시인은 일상의 이미지를 일시정지한 뒤 다각도에서 제시하고, 우리에게도 그것을 오래도록 지켜보게 한다. 그를 따라 우리는 오늘 하루 분명 몇 번이고 바라보았을 테지만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이미지들을 바라본다.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면 정지된 것들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감을 계속해서 덧바르면 종이는 울게 마련이다. 무감하다고 생각한 것들에 감정이 깃든다. 그렇게 이효영 시인과 함께 들여다본 일상은 비로소 새롭게 사유된다. 그는 시인의 말에 이렇게 쓴다.

"당신이 쓰고/ 나는 읽는다"

바라보고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는 모든 것이, 바로 오늘이 시가 된다. 지금 이 순간 이미지는 사방에서 쏟아져 오고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시를 쓴다.

송지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