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 등 유명 위스키를 할인된 가격에 샀다는 지인 말을 듣고 눈이 번쩍였습니다. 고금리·고물가로 팍팍해진 살림살이에 중고거래 플랫폼을 기웃거리거나, 소소한 재테크가 없을까 고민하던 터라 어떻게 하면 싸게 살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손품’을 팔면 현장에 가지 않고도 입찰을 할 수 있다고 하니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죠. ‘온라인 만물상’으로 불리는 ‘세관공매’를 잘 이용하면 꽤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어려운 시절에는 더더욱.
공매(公賣)는 한자대로 ‘공적인 판매’란 뜻이에요. 국가가 실시하는 경매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국세징수법에 의해 압류한 재산을 처분하거나, 형사소송법에 따른 압수물 중 보관하기가 곤란한 물건을 매각하는 게 공매입니다. 공공기관 재산 중 쓰지 않는 불용자산을 처분하는 것도 공매죠.
관세청이 진행하는 세관공매는 1인당 면세 한도가 초과돼 적발된 해외 구매물품이거나 관세 또는 부가세를 제대로 내지 않아 통관이 허용되지 않은 수입물품 등이 대상입니다. 여행자가 잃어버린 분실물도 포함됩니다. 이들 중 일정 기간 지나도 찾아가지 않거나 수입통관이 이뤄지지 않은 물건을 경매 처분하는 것이지요. 과거에는 공매를 진행하는 세관에서 직접 입찰을 해야 했지만 2005년 12월부터 유니패스를 도입, 온라인으로도 낙찰을 받을 수 있게 바꿨습니다.
물품 종류는 각양각색이에요. 인기가 가장 높은 상품은 주류입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연초부터 이달 12일까지 주류 낙찰 건수는 41건입니다. 화장품·가방·향수 등 일반물품 공매 실적과 같아요.
공매 물품 가격은 감정평가사의 감정 결과에 8%의 관세, 10%의 부가세를 더해 최종 결정됩니다. 전문가 감정을 받은 진품만 공매로 넘기기 때문에 ‘혹시 가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할 필요가 없는 게 공매의 큰 장점입니다. 위조품은 사전에 모두 폐기되거든요.
유찰로 공매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첫 공매가의 10%씩 가격이 떨어지는 것도 큰 이점이죠. 1회차 공매가격이 10만 원인 물품은 2회차 때 9만 원, 3회차 때 8만 원으로 떨어집니다. 인기 많은 품목이 계속 유찰되는 일은 적지만 6회차에 낙찰을 받는다고 하면 최초 공매가의 반값에 물건을 가져올 수 있다는 얘기예요. 6회차에서도 주인을 찾지 못하면 공매 절차가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으로 넘어가 법인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국고 공매' 품목이 됩니다.
유니패스에서 세관공매를 하는 방법을 따라 하다 보면 그리 어려운 게 아니더라고요. 우선 유니패스(unipass.customs.go.kr)에 접속해 회원 가입과 로그인을 합니다. 유니패스는 사업자등록증과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았다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사업자등록증이 없는 개인은 세관 승인 없이 바로 이용이 가능하지만, 사업자는 세관 승인 후 입찰에 나설 수 있어요.
그런 다음 유니패스 상단에 있는 ‘업무지원’ 메뉴를 선택합니다. 이후 세부 메뉴를 택해야 하는데 ‘체화공매’로 들어가 ‘공매물품조회’를 누르면 세관공매에 나온 물건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인 입찰자는 ‘개인’으로 구분된 물품만 살 수 있어요. 만약 세관공매 물건이 ‘사업자’로 분류돼 있다면 유통업자나 소매업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물품이기 때문에 사업자등록증이 필요합니다. 물론 개인도 관할세무서에서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18일 유니패스에서 조회해 보니 24건이 세관공매에 올라와 있네요. 그중 주류는 5건입니다. 모두 김해공항세관에서 진행하는 공매로, 고급 위스키인 조니워커 블루 750mL가 34만5,000원, 발렌타인 23년산 700mL가 28만 원에 나와 있습니다. 1회 차 때는 조니워커가 약 38만 원, 발렌타인이 약 31만 원에 올라왔는데 한 번 유찰되면서 모두 10% 정도 가격이 내렸어요.
발렌타인 23년산 위스키의 공매번호는 140-23-02-900005-2로, 맨 앞의 140은 김해공항세관을 뜻합니다. 공매 물건이 많이 나오는 서울세관과 인천세관 번호는 각 010, 020입니다. 세관 번호 뒤의 숫자는 공매연도-회차 수-물품 일련번호-휴대용품(1이면 수입화물)이란 의미예요.
컴퓨터 부품을 장착하는 메인보드 중고 95개가 약 104만 원, 중국 블록회사에서 나온 미국 군용차량 험비 등 28개 제품은 160만 원, 어린이용 모기퇴치패치 864개는 5만9,000원에 올라와 있습니다. 모두 세관공매 2회차 제품들이네요.
주류는 개인과 사업자 모두 입찰할 수 있지만, 메인보드·장난감·모기퇴치패치 등은 사업자로 구분돼 있어요. 그리고 세관공매 인기 덕인지 공매 횟수가 3회차 이상인 물건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았다면 이제 입찰을 해야겠죠. 관세청에서 공매 10일 전 공고를 내면 공매일 당일 유니패스를 통해 전자입찰을 하거나 세관을 직접 방문해 입찰할 수 있습니다. 입찰 참가 전 유의사항을 반드시 확인한 후 입찰금액을 적어 입찰에 나서면 됩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입찰 전에 입찰금의 10%를 지정된 은행에 내야 해요. 만약 입찰 보증금이 입찰금의 10%에 못 미칠 경우 입찰이 무효가 되기 때문에 잘 계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경매가 그렇듯 낙찰은 최고가를 써낸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만약 같은 입찰가격을 적어냈다면 추첨으로 낙찰자를 정해요. 입찰 결과는 당일 오후 1시에 유니패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관공매 낙찰자가 보증금을 제외한 남은 금액을 지정 은행에 입금하면 낙찰 절차는 끝이 납니다. 잔금을 완납하지 않으면 낙찰은 무효가 되고, 당초 낙찰자가 넣었던 보증금도 국고 귀속 처리됩니다. 낙찰받지 못했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속은 상하겠지만 미리 낸 보증금은 되돌려주거든요.
유니패스가 아니라 세관 현장에서 공매에 참여했다면 잔금납부 영수증을 갖고 공매품 반출서를 수령한 뒤 물건이 있는 창고에서 갖고 나오면 돼요. 유니패스로 낙찰받았다면 직접 가지러 갈 필요 없이 택배 신청을 할 수도 있습니다.
손품을 팔아서 ‘득템’할 수 있는 세관공매는 분명 매력적이에요. 하지만 주의할 사항도 여럿입니다. 우선 술·가방 등 여행자 휴대품 공매에 개인이 입찰할 경우 1인당 같은 종류의 물건 3개까지만 입찰할 수 있습니다.
입찰 시 공매 조건도 잘 살펴봐야 해요. 전자파 인증 등 공매 조건이 달린 물건을 낙찰받을 때는 세관에 관련 서류를 낙찰일로부터 30일 안에 내야 하거든요. 특히 가죽으로 만든 가방은 공매 조건에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적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해당되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멸종위기종인 야생동물 가죽으로 만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죽 샘플을 채취하는데, 제품이 1개일 경우 제품 자체가 훼손될 수 있으니 입찰 여부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전자입찰이 간편하지만 가급적이면 입찰 전 해당 세관을 직접 방문해 눈으로 물건을 확인하는 게 좋습니다. 부동산의 ‘임장’만큼 세관공매에선 창고에 가서 직접 살펴보는 ‘공람’이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혹시 모를 파손 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공매일 전에 담당자에게 연락하면 물품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