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욕먹어도 싸요."
한 국회의원실 보좌관이 2월 초 가상자산 기초 취재에 나선 한국일보에 전한 말이다. 그때도 지금도 가상자산 관련 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이 2013년 7월 국내에 처음으로 설립된 걸 감안하면 10여 년 동안 가상자산 시장은 무법지대나 다름없었다.
그사이 △테라·루나 사태 △퓨리에버 살인 사건 △김남국 의원 사태 등 대형 이슈가 연이어 불거졌다. 국회는 부랴부랴 급한 불부터 끄자는 데 의견을 모아 투자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 '가상자산 이용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안)을 내놨다. 국회는 이 법안을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안은 그간 발의된 가상자산 관련 법안 19건을 통합·조정해 마련됐다. 핵심은 이용자 보호다. 가상자산 거래소에 △공신력 있는 기관에 고객 예치금 예치·신탁 △전산장애·해킹 대비 보험·공제 가입 △거래기록 15년 보관 의무화 등을 명시했다. 그러면서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시세조정 행위, 부정거래 행위를 불공정거래로 규정했다.
처벌 규정도 있다. 불공정거래 행위로 적발되면 1년 이상 징역과 부당이득의 3~5배에 이르는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가 불공정거래로 얻은 이익의 2배 또는 50억 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가상자산 사업자의 감독·검사권은 금융위에 부여하고, 한국은행의 자료 요구권도 규정했다.
문제는 2단계 법안이다. 1단계 법안은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맞췄고, 조속한 입법을 위해 민감한 사안은 2단계 법안으로 미뤄놨다. 가상자산 발행과 상장, 공시, 사업자 라이선스 발급 등 관련 업체의 영업행위를 규제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될 예정이라 거래소와 발행업자, 평가업체 등의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입법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가상자산 관련 입법 논의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똑같은 코인이라도 거래소마다 가격이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합 시세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지만 2단계 입법안에 실릴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주원의 정재욱 변호사는 "유럽의 암호화자산 법률이 내년에 시행되는 만큼 국내 입법 추진 움직임이 늦은 건 아니다"면서도 "2단계 입법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다 보면 법안 마련에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밝혔다.
김남국 의원의 60억 코인 보유 논란의 여파로 공직자 재산공개 시 가상자산 신고를 의무화하는 법안(공직자윤리법 개정안 등)도 지난 11일 발의됐다. 그러나 국회에서 신속하게 통과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관련 법안이 2018년부터 8차례나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코인게이트 진상조사단' 외부 전문가로 참여 중인 정 변호사는 "공직자의 가상자산 보유·거래와 관련한 이해상충 문제나 부정부패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선 관련 법안 통과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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