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절대권력? 유람선이 뒤집히자 계급까지 뒤집힌다

입력
2023.05.16 16:20
22면
17일 개봉 영화 '슬픔의 삼각형'
유람선 배경 현대 자본주의 풍자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젊은 연인 칼(해리스 디킨슨)과 야야(찰비 딘)는 모델이다. 근사한 외모로 화려한 옷을 입고 사람들 앞을 걷는다. 외양은 휘황하나 삶은 추레하다. 서로 밥값을 내지 않으려 눈치 싸움을 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인플루언서로 활약하며 삶을 근근이 이어간다. 두 사람의 양면성은 영화 ‘슬픔의 삼각형’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칼과 야야는 협찬으로 호화 유람선을 탄다. 배에는 호감 가는 승객이 없다. 다들 밉상에 진상이다. 승무원이 쉴 수 있도록 하겠다며 수영을 강권하거나 있지도 않은 돛이 더럽다며 세탁을 요구한다. 칼과 야야를 제외하면 승객들 모두 부자다. 대부분이 졸부다. 바뀐 세계정세로 돈벼락을 맞았거나 정보통신기술로 떼돈을 벌었다. 뼈대 있는 사업가 집안이라며 근엄한 척하는 영국인 노부부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알고 보면 대를 이어 무기제조업을 하고 있다.

부유한 승객들은 있는 척, 잘난 척, 점잖은 척, 선한 척하나 속물근성을 감추지 못한다. 돈이 절대권력인 유람선 안에서 이들은 왕과 같은 존재다. 하지만 유람선이 어떤 이유로 난파를 하게 된다면. 영화는 전복적인 이야기 전개를 통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상영시간 147분 동안 스크린을 지배하는 정서는 냉소다. 도입부부터 차가운 웃음이 서려 있다. 칼이 동료 모델들과 영상을 찍는 대목에서다. 촬영 진행자는 홀로 근엄하고 도도한 표정을 지으면 명품 의류 광고 사진, 여럿이 환히 웃으며 친밀함을 드러낼 때는 저가 의류 광고 사진이 된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미지가 돈이 되고 돈이 곧 권력이 되는 세상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다.

유람선에서 펼쳐지는 만찬 장면 역시 눈여겨볼 장면이다. 기상악화로 배가 심하게 흔들리는 상황에서 승객들은 옷을 차려입고선 우아하게 값비싼 음식을 먹고 샴페인 또는 와인을 들이켠다. 속이 울렁거릴 만한데 만찬을 그만두자고 먼저 손드는 이는 없다. 허세 때문이다. 유람선이 난파한 이후에는 더 예측불가의 난장이 펼쳐진다. 권력관계는 뒤집어지고 새로운 질서가 형성된다. 그 과정에서 부자들의 위선과 허위가 드러난다.

영화는 신랄하다. 그래서 종종 웃긴다. 러시아 졸부와 미국 선장이 만취한 채 벌이는 ‘명언 말하기 대결’처럼 두뇌를 자극하는 장면이 여럿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한 비판이기에 쉬 공감하게 된다. 영화에는 ‘관대한(generousㆍ자막은 화끈한으로 의역)’이라는 말이 종종 나온다. 하지만 관대한 인물은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의외로 ‘관대한’ 장면이 나오나 그 뒤 이야기를 감독은 관객 상상에 맡긴다. 관대함이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하고 싶은 듯하다.

스웨덴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가 연출했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외스틀룬드 감독은 ‘더 스퀘어’(2017)에 이어 2번째 수상이었다.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2015)으로 남성성을 풍자하고, ‘더 스퀘어’로 미술계 위선을 까발렸던 외스틀룬드의 비판적 시각은 여전히 예리하다. 제목은 보톡스로 펼 수 있는, 미간 주름을 의미한다. 돈으로 주름을 없앨 수 있다고 하나 마음속 슬픔까지 지울 수 있을까. 제목이 담고자 한 메시지라 할 수 있다. 1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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