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노동력은 그저 생산 자원 중 하나로 인식됐다. 더 많은 물건을 만들기 위해선 더 많은 노동자를 투입하거나 그들의 노동시간을 늘리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디지털화는 노동자 '숫자'가 곧 생산성이던 과거의 공식을 깨뜨렸다. 변화한 세상에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선 노동자와 노동의 질이 변해야 했다. 노동력을 인적 자원으로 인식하고 이들을 혁신에 적극 참여시키는 '일터혁신'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계기다.
한국노동연구원이 16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주최한 '일터혁신 국제컨퍼런스'에서는 세계 각국의 일터혁신 사례와 우리나라의 당면 과제 등이 다뤄졌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최근 저출생·고령화,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달, 기후위기와 탈탄소화 등 환경 변화 속에서 일터혁신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터혁신은 국가·시대·기업에 따라 다르게 진행됐다. 대표적인 게 일본 도요타에서 시작한 '린(Lean) 생산방식'이다. 생산과정 내 낭비를 철저히 줄여 조직을 작게 유지하는 방식인데, 핵심은 필요한 제품을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는 'JIT(Just In Time)' 시스템이다. 린 방식을 채택하면 과거 대량생산 방식에 비해 노동력과 공간, 재고가 줄어들면서도 생산성은 높아진다는 것이 검증됐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건은 '숙련된 노동자'다. 전우석 일본 주쿄대 교수는 "고장의 징후를 사전에 감지해 내고 불량품을 바로 찾아낼 수 있는 현장 숙련공의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린 방식을 벤치마킹하려다 실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일터혁신은 2000년대 초반까지 '고성과 작업시스템'이 주도했고, 최근에는 '일의 미래(Future of Work)'가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두 방식 모두 사람을 중심에 두고 팀 단위 조직을 꾸려 높은 성과를 내는 게 목표다. 다만 20년 전 중앙집권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던 혁신이 이제는 지역, 시장, 구성원 개개인 특성에 맞추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박은연 미국 우나메사(Una Mesa)협회 연구위원은 "미국은 인구·사회적으로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데, 과거처럼 중앙집권적인 접근으로는 변화 속도와 다양성을 따라갈 수 없다"며 "일터혁신 방식도 새로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진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나라 일터혁신의 대표 사례는 1990년대 후반 유한킴벌리의 '자율작업팀' 모델이다. 노세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시 유한킴벌리 사례가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국내 노동과 고용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며 "이후 20여 년간 우리나라는 정책적으로 일터혁신을 추진해 왔다"고 설명했다.
노 연구위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일터혁신은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목표에 따라 경영자 주도로 시작됐다. 다만 노동자가 혁신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노 연구위원은 "중요한 건 경영자 마인드 변화인데,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에게 재량을 부여해야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 주도의 일터혁신으로는 근본적인 혁신이 어렵다는 점도 지적됐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터혁신을 정부가 주도하는 나라는 많지 않은데, 우리나라는 세계 어떤 나라보다 정부의 역할이 크다"며 "중소기업 인사관리 시스템 정비에는 큰 도움이 됐으나 한계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의 성과향상을 위해서라도 '노동의 인간화'는 절실한 과제로, 인구 구조 변화로 심화할 노동력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사가 함께 참여해 '매력 있는' 직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