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글로벌 산업에서 시간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 적이 있다. 미국 경영컨설턴트 조지 스톡이 1990년 '시간과의 경쟁: 시간기반 경쟁이 어떻게 글로벌 시장을 재편하고 있는가'라는 책을 출간한 것이 계기였다.
그 전까지 경영학자들은 기업 경쟁우위의 원천을 저원가와 차별화로 꼽았다. 여기에 시간이 추가된 것이다. 그런데 '시간기반 우위'는 우리나라나 우리 기업에는 이 책이 나오기 오래전부터 실천하던 문화였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사회생활과 생산현장에서 관찰되었던 '빨리빨리 정신'이 대표적인 예다. 2002년 현대차가 중국에 진출한 이후 등장한 신조어가 '현대속도(現代速度)'다.
시간기반 우위가 성공을 가져온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 중 하나로 선발자 이점을 들 수 있다. 선발자는 시장을 선점, 후발자 추격을 따돌린다. MS-윈도가 PC의 OS 시장을, 안드로이드가 스마트폰 OS 시장을 선점함으로써 후발자는 추격하기 어렵게 됐다.
빨리빨리 습관과 문화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세상 많은 일에 이런 상쇄관계가 작용한다. 저원가 우위를 강조하면 고급 품질을 유지하기 어렵다. 고급 품질을 고집하면 저원가를 포기해야 한다. 두 가지 우위를 동시에 누리려면 부작용이 나타나기 쉽다. 그래서 값싼 명품가방이나 숙박비 저렴한 고급 호텔은 존재하기 어렵다.
그런데 두 가지 우위를 동시에 확보한 국내 기업이 있다면 어떨까. 여기에 시간기반 우위도 누릴 수 있다면? 예를 들어보자. 국내 한 회사가 개발한 코로나19 치료제이자, 범용 항바이러스제 CP-COV03은 시장에서 경쟁 우위의 세 가지 원천 중에서 이미 두 가지를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약효가 입증되기만 한다면, 정부 노력과 의지에 따라 세 가지 우위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시간기반 우위를 누릴 수 있는지 여부만 남은 상태인데, 선발자 이점을 누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과 의지에 달렸다.
우리 바이오헬스 산업은 전기전자, 자동차, 조선 등과 같은 산업에 비해서는 국제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낮다. 우리가 개발한 신약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경각심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다가올 또 다른 팬데믹에 대응할 수 있는 신약이라면 그 신약은 전 세계에 이름이 알려질 가능성이 높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정부는 제약산업에서 시간기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에 나서야 한다. 제약산업에서는 긴급사용 승인제도가 그런 의미를 지니는데, CP-COV03이 적정 요건을 지녔다는 게 학계에서 객관적으로 검증된다면 당국의 전향적 조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