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가서 흰 가운만 보면 혈압이 올라가는데…

입력
2023.05.15 15:09
‘백의 고혈압’, 고혈압으로 이어질 위험 높아

가정 주부 A씨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고혈압을 오래 앓았던 이유로 평소 집에서 생각날 때마다 혈압을 측정해 정상 범위 내로 꾸준히 혈압을 관리하고 있었다. 얼마 전 아이가 아파서 인근 소아청소년과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혈압을 측정했더니 혈압이 높게 나타나 걱정이 앞섰다. A씨는 집에 비치해 둔 혈압계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고민하며 내과 진료를 보았고 혈압은 정상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백의(白衣ㆍwhite gown) 고혈압’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백의 고혈압은 혈압 치료를 받지 않는 사람이 가정 등 편안하고 익숙한 환경에서 혈압을 측정했을 때 정상 혈압이 나오지만 흰 가운을 입은 의료진이 있는 환경이나 긴장된 상황에서 혈압을 측정할 경우 혈압이 높게 나오는 현상을 말한다.

대한고혈압학회가 발표한 ‘2022 고혈압 진료 지침’에 따르면 140/90㎜Hg 이상일 때 고혈압으로 진단한다. 반면 백의 고혈압은 집에서 재는 ‘가정 혈압’이 135/85㎜Hg 미만이지만 진료실에서 측정할 때(진료실 혈압) 140/90㎜Hg인 이상인 경우로 분류한다.

고혈압은 성인 3~4명 중 1명이 갖고 있다. 지난해 기준 20세 이상 인구 중 고혈압 환자는 1,374만 명(유병률 27.7%)이다. 대한고혈압학회에 따르면 20세 이상에서 고혈압 환자는 29%로 3명중 1명꼴이지만 치료율은 63%, 조절률은 47%에 그치고 있다.

대한고혈압학회의 ‘제1기 활동 혈압 모니터 등록 사업’ 자료에 따르면 백의 고혈압 유병률은 14.9%이며 국내외 보고에서 고령ㆍ여성ㆍ임신부ㆍ비흡연자ㆍ비만도가 낮을 때 등에서 흔히 관찰됐다.

김수형 대동병원 심장혈관센터 과장(심장내과 전문의)은 “건강한 사람도 병원이라는 공간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으로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어 백의 고혈압이 나타날 수 있다”라며 “백의 고혈압은 단기적으로는 양호한 혈압 결과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추적하면 고혈압으로 이어지거나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높은 편으로 정기적으로 혈압을 재는 게 좋다”고 했다.

고혈압은 혈압에 대한 정확한 평가로부터 치료 첫걸음을 뗀다고 할 수 있다. 정확한 혈압 측정이 이루어져야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시행하며 불필요한 약물로 인한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다.

혈압은 기계, 부위, 측정 환경 등에 따라 변동성이 큰 편으로 ‘진료실 혈압’을 표준 방법으로 반복 측정하거나 ‘가정 혈압’을 추가적으로 시행해 고혈압을 진단해야 한다.

고혈압 환자는 평생 혈압 치료 및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고혈압이 발병하면 반드시 평소 생활 습관을 개선해야만 한다.

체중을 줄여 적정 체중으로 관리하고 음식 섭취는 되도록 싱겁게 먹고, 담배와 술을 끊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혈압 조절에 도움이 된다.

생활 습관 변화로 혈압 조절이 되지 않거나 혈압이 굉장히 높을 때에는 약물 치료로 혈압을 조절하며 때로는 여러 가지 약물을 같이 복용해야 혈압이 조절될 때가 있다.

20세 이상이라면 2년마다 진료실 혈압을 측정하도록 하며 40세 이상이거나 A씨처럼 고혈압 가족력이 있거나, 흡연, 음주, 비만 등 고위험군이라면 1년마다 진료실 혈압을 측정하도록 한다.

최근에는 가정용 혈압계나 스마트워치 등을 통해서 편리하게 혈압을 측정하며 관리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진료실 혈압은 병원에 내원했을 때에만 한두 번 혈압을 측정하는 반면 가정 혈압의 경우 하루 중 반복적으로 여러 횟수로 측정해 ‘아침 혈압’ ‘주간 활동 혈압’ ‘야간 혈압’ 등의 정보와 혈압 변동성을 알 수 있으므로 의료진 판단 하에 부가적으로 시행하도록 한다.

김철호 대한고혈압학회 가정혈압포럼 회장(분당서울대병원 노인의료센터 교수)은 “고혈압 증상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심뇌혈관 질환 발생 및 사망 위험을 크게 높이는 무서운 질병”이라고 했다. 김 회장은 “가정 혈압 측정은 높은 재현성과 함께 동일 시간대의 혈압 모니터링이 가능하며, 진료실 혈압만으로 쉽게 진단할 수 없는 백의(白衣) 고혈압과 가면(假面) 고혈압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므로 아주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