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범죄 63%가 '상장 예정 사기'... 법원은 1%만 코인 가치 인정

입력
2023.05.16 13:00
<2>코인 대통령과 180개 사기극
코인 사기 사건 180건 판결문 분석
코인 활용될 뿐 기존 사기 수법과 유사
"일확천금 기회" 욕심이 투자자 눈 가려 
자본시장법 적용 안돼 사기꾼 처벌 약해
집행유예·징역 2년 이하 선고 절반이나

2008년 등장한 비트코인에 이어 2021년 말 가상자산 투자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처참했다. 한 방을 노렸던 투자자들의 욕망은 사기꾼들의 한마디에 손쉽게 넘어갔다. 투자자 보호 장치가 없고 규제가 미비해 무법지대나 다름없던 코인판에서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한국일보는 최근 2년간(2021년 1월~2023년 2월) 선고된 코인 사기 사건 판결문 180개를 분석해봤다.

코인 사기 사건은 기존의 사기 사건 프레임과 유사했다. 코인이 범죄에 활용됐을 뿐이다. 다만 법규 미비로 마켓메이킹(MM·거래량과 가격을 조정하는 인위적 행위) 업자들과 코인 발행업체 및 거래소의 시세조종 등 정작 무겁게 처벌받아야 할 사람들은 기소되지도 않았다.

‘상장 예정’ 사기가 제일 빈번

A씨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개설해 코인 홍보글을 남겼다. “새로 개설되는 거래소에 코인 2개가 상장될 예정이다. 코인들은 필리핀 카지노에서 1,000원의 가치로 변환돼 사용될 예정이다. 사전 판매로 개당 10원에 구입할 수 있으니 지금 코인을 사라.” “상장 일정이 다 나왔다. 이번 프라이빗 세일에서 코인은 개당 3원에 판다. 상장되면 거래소에서 10원 이하로는 안 내려간다.”

코인 사기 사건 180개 중에는 이와 같은 ‘상장 예정 사기’(63.3%)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거래소에 상장돼 코인이 거래되기 시작하면 가격이 오르는 속성을 이용해 피해자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상장 전에 특정 투자자에게만 '프라이빗 세일(비공개 판매)'을 진행한다며 투자를 적극 권유한 경우도 빈번했다. 사기 행위를 저지른 이들은 코인 개발 등 코인 관련 업체(62.8%)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재판부는 ‘상장 예정 사기'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거래소 상장 일정이 확정됐다고 홍보하지만, 실제론 상장 여부가 불투명한 점, 상장된다고 하더라도 가상자산 가격이 유동적이라 수익 발생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상장 예정 사기 이외에도 △코인 개발업체 사기(26.7%) △대리투자 사기(21.7%) △다단계식 코인 판매(17.2%)도 적지 않았다. 지난 3월 발생한 강남 납치살인 사건의 배경이 된 퓨리에버코인은 코인 개발업체 사기의 전형적 사례다. 퓨리에버코인은 공기청정 활동을 하면 암호화폐를 지급한다고 홍보했다. '농산물 유통 관리' '전기차 충전 사업' '스포츠 승률분석' '태양광 사업' 등 블록체인 기술과 무관한 사업에 코인을 결합해 사기를 치는 경우도 있었다.

사기·유사수신행위·방문판매위반 적용

코인은 주식과 다르게 증권성이 인정되지 않아 사기적 부정거래를 엄격히 규제하는 자본시장법 적용을 받지 않고, 대부분 사기죄(83.9%)로 처벌됐다.

법원에선 ①발행인과 백서(White paper)가 부실한 경우 ②성사 가능성이 매우 낮음에도 사업성에 대해 허위 공시한 경우 ③‘마켓메이킹(MM)을 통한 펌핑(인위적 가격 끌어올리기)’ 등 비정상적 시세조종·조작을 통해 가상자산 가격을 인위적으로 상승시킨 경우 사기 혐의를 인정했다.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속인 사실(기망행위)과 속아서 산 것(처분행위)의 인과관계가 모두 입증돼야 하는데, 법원은 코인 사기 범죄가 정보비대칭 환경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가상자산 리딩방을 운영하며 신뢰를 쌓은 뒤 웹툰 플랫폼 서비스업 등에 사용되는 코인을 개발한다며 14억여 원을 편취한 사건에 대해 “가상자산 영역은 새로운 금융거래 영역으로서 사회적 기대와 투기심리가 크다. 정보비대칭을 기회주의적으로 이용해 투자자들을 착오에 빠뜨렸다”고 봤다.

다단계 조직이 리딩방 등을 이용해 코인을 판매하면 유사수신법 위반(27.2%)이나 방문판매법 위반(11.7%) 혐의가 적용됐다.

피해 금액 10억 원 초과하는 경우 多

코인 사기 사건의 피해금액은 적게는 500만 원부터, 많게는 2조 원에 달했다. 180개 사건을 피해금액 기준으로 살펴보면 △5,000만 원 미만(21.1%) △5,000만 원 이상 1억 원 미만(15.0%) △1억 원 이상 5억 원 미만(19.4%) △5억 원 이상 10억 원 미만(7.8%) △10억 원 초과(26.7%) 등이었다.

투자자 신뢰를 받기 위해 정치인과 연예인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코인 발행회사 대표 모습을 합성해 피해자들로부터 4,500억 원을 편취한 '코인업 월드뱅크코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투자한다고 홍보하는 '삼성 이재용 코인'이 대표적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가상자산 불법행위 피해 신고액은 2017년 4,674억 원에서 2021년 3조1,282억 원으로 급증했다. 특히 다단계 방식이 결합되면 피해금액이 더 컸다. 피해자 5만여 명으로부터 2조2,497억 원을 편취한 가상자산 거래소 ‘브이글로벌’이 대표적이다. 브이글로벌 대표는 “투자자가 600만 원을 투자하면 최대 1,800만 원의 수익을 얻을 수 있고, 하위 투자자를 모집하면 각종 수당이 지급된다”며 사기 행각을 벌이다 징역 22년이 선고됐다.

코인 가치 쉽게 인정하지 않는 재판부

재판부가 코인 가치를 인정한 경우는 180건 중 2건에 불과했다. 사기에 이용된 코인은 실제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으나(75%), 거래소에 상장된 경우는 적었고(24.4%), 실물 서비스와 연동되는 경우(36.3%)도 많지 않았다.

재판부는 코인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 백서 등을 살펴 블록체인 기술 사용 여부 등을 확인했다. 회사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사업을 했는지, 블록체인의 외피를 쓴 포인트 사업에 불과한지 들여다보려고 한 것이다. “피고인들이 개발, 채굴하고 있다고 말한 코인은 채굴한 적이 없고 다른 회사에 개발을 위탁한 전자코인으로,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 본 경우나 “해당 코인은 암호화폐 이더리움의 네트워크와 개발규칙을 이용해 쉽게 만들 수 있는 ERC-20 기반의 토큰으로 코인 자체를 발행하는 데 특별히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판단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코인을 발행하면서 제시한 프로젝트 내용의 실현 가능성을 판단하기도 했다. B씨는 “세계 최초로 채굴기 특허를 가진 회사에서 자판기 사업 유통업체와 연계해 채굴한 코인 사업을 하고 있다. 원천 기술이 있어 재정이 튼튼하다“며 코인을 팔았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코인을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나 프로그램이 아직 계획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100억 개의 코인을 발행해 그중 35억 개를 크라우드 펀딩 또는 사전판매 방식으로 개당 30원가량에 판매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프로젝트의 내용 자체가 허황되고 사기성이 짙다”고 밝혔다.

집행유예와 징역 2년 이하가 50%

피해금액에 비해 형량은 낮은 편이었다. 형량별로 보면 △무죄(8.9%) △집행유예(25.6%) △징역 2년 이하(24.4%) △4년 이하(16.7%) △4년 초과(16.7%) △벌금형 (7.8%) 등으로, 집행유예나 징역 2년 이하가 절반에 달했다. 블록체인법학회 회장인 이정엽 LKB 대표 변호사는 “법원이 코인 투자의 위험성에 대해 투자자도 알고 있었다는 관점에서 접근해 처벌이 약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사기죄는 피해금액을 특정해야 하고, 기망(속임)과 손해가 연관돼야 처벌할 수 있기에 입증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실제로 판결문의 양형 사유에 일확천금을 노린 피해자 책임이 언급되는 경우가 다수 있었다. '코인은 주식과 같은 것으로, 포인트로 코인을 구입해 배당금을 받고 코인 가치가 증대되면 그만큼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코인에 투자하면 추천수당 20%, 매칭수당 17%, 주단위 배당금을 지급해주겠다'는 사기 사건이 대표적이다. 재판부는 “피해자들 또한 단기간에 고수익을 얻으려는 허황된 욕심 탓에 피해를 입게 된 것으로 보여, 피해자들에게도 범행 발생 또는 피해 확대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코인 사기 사건이 끊이지 않는데도 형량이 높지 않다 보니, 증권 범죄에 적용되는 자본시장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예자선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는 “코인 판매는 코인 사업에 대한 투자금 모집이기 때문에 자본시장법상 '투자 계약 증권 발행'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시세조종, 허위사실, 내부정보 이용 등으로 매매한 것을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로 처벌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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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지대 코인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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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진 기자
이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