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교복만 봐도 식은땀을 흘린다’는 말부터 무덤덤하게 꺼냈습니다.”
사실상 체념에 가까웠다고 했다. 지난해 중학교 진학 이후, 올해까지 아들에게 지속된 집단 폭행에 기본적인 모성 본능조차 짓눌렸던 탓으로 읽혔다. 학교폭력(학폭) 전담인 한 비영리 공익법인의 A 상담팀장은 “지난 3월 지방에서 접수됐던 사례”라며 당시 내담자의 심리 상태에선 무기력함만 감지됐다고 기억했다. 지난해 학폭으로 적발된 이후 학폭대책심의위원회의 서면 사과 조치에 따라 마무리된 듯했던 이 학폭은 이후 온라인상에선 더 잔인하게 다가왔다. 피해 학생에게 다이렉트메시지(DM)로 “굴욕적인 동영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포하겠다”며 2차 사이버 폭력까지 자행되면서다. 약 10명의 동급생 등에게 당해왔던 집단 폭행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등교도 못 했던 피해 학생 입장에선 충격이 컸다. A 팀장은 “(트라우마 등으로) 외출 자체가 사실상 어려운 형편이라고 전했던 어머니의 아들 걱정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이런 사이버 폭력 상담 건수만 월 평균 100건에 달한다”고 씁쓸해했다.
사이버 폭력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스마트폰 대중화와 함께 도래한 정보화 시대의 흐름을 틈타 일선 학교까지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인기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 등을 포함한 유명인이나 일반 성인들 사이에서 주로 나타났던 종전과는 달라진 양상이다. 무엇보다 미성숙한 청소년들에게 치명적인 인격 살인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사이버 폭력의 심각성은 더해진다.
적신호는 통계에서도 포착된다. 지난 3월 말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서 발표한 ‘2022년 사이버 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 10명 가운데 4명은 사이버 폭력을 직접 저질렀거나 당해봤다고 답했다. 특히 사이버 폭력 가해 및 피해 경험률에선 성인의 경우엔 9.6%로 전년 대비 6.2%포인트 감소한 반면 청소년은 41.6%로 전년 대비 12.4%포인트 증가했다. 시·공간에서 자유로운 데다, 익명성으로 무장된 사이버 폭력에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멍들어간 셈이다.
사이버 폭력에 적합한 형태로 진화 중인 주변 환경도 청소년들에겐 부정적이다. 갈수록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 사용 연령은 낮아질 게 뻔한 데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급증한 인터넷 메신저나 비대면 응용소프트웨어(앱) 등은 사이버 폭력의 기생 조건엔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이에 따른 관련 규제나 인식 개선은 ‘표현의 자유’와 충돌하면서 자연스럽게 미온적으로 자리한 게 사실이다. 혐오나 조롱, 비하 발언에서부터 집단 따돌림과 스토킹 등을 비롯한 사이버 폭력 가해자들의 죄책감이나 범죄 의식은 여전히 바닥인 데도 말이다. 아직까지 ‘온라인은 현실과 동떨어진 가상세계이니까, 이 정도는 괜찮을 거다’라는 이기적인 자기 합리화의 늪 속에서다. 그사이, 우울증과 불안감 등에서 야기된 극단적인 선택들은 일상적인 피해 사례 정도로 치부되고 있다.
3년 전 오늘이다. SNS상에서 사이버 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15세의 꽃다웠던 여학생 부모는 지난 2020년 5월 15일,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렇게 직격했다. “청소년들에게 사이버 공간의 세상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공간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인터넷상에서 청소년들의 사이버 폭력은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