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사장 사퇴, 40일 넘게 요금 인상 미룬 정부여당 움직일까

입력
2023.05.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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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공기업 한국전력의 정승일 사장이 임기를 1년 가까이 남기고 물러난다. 정부가 2분기(4~6월) 전기‧가스요금 인상안을 국민의힘과 당정 협의를 통해 정하려 했지만 40일 이상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결국 정 사장이 사퇴하기로 한 것. 여당인 국민의힘이 한전의 영업 손실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정 사장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지 보름 만이다. 같은 날 한전과 한국가스공사가 추가 재정건전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에너지 요금 관련 정부와 여당의 줄다리기는 이르면 다음 주 초 일단락될 전망이다.

정 사장은 이날 전남 나주시 본사에서 열린 '비상경영 및 경영혁신 실천 다짐 대회'에서 추가 자구책을 발표한 직후 사의를 표명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6월 취임한 정 사장은 임기를 1년 정도 남겨뒀다. 그는 입장문에서 "오늘 자로 한국전력공사 사장직을 내려놓고자 한다"며 "당분간 한국전력의 경영진을 중심으로 비상경영체제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정 사장은 이날 2월 재정건전화 계획에 담긴 20조1,000억 원에 추가로 5조6,000억 원을 더 늘린 한전 자구책을 내놨다. 가스공사도 재정 감축 규모를 기존(14조원)보다 10% 늘린 경영 혁신안을 내놨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크게 뛰어올랐지만 전기‧가스요금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면서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이날 한전은 1분기(1~3월) 6조1,776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증권사들이 예측한 5조 원대 적자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자회사인 5개 공공 발전사의 연료비가 오르고(1조4,346억 원), 민간 발전사에서 사 오는 전력 구입비도 증가한 영향(1조5,882억 원)이 컸다. 한전은 "전력 판매가격이 전력 구입가격에 미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날 가스공사 역시 민수용(주택용) 누적 미수금이 11조6,000억 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1분기 요금 동결 등으로 지난해 연말보다 3조 원이나 늘었다. 미수금에 대한 이자 비용이 급증해 가스공사의 당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81%나 줄었다.

"회사 채권 발행 증가로 인한 금융시장 왜곡, 에너지산업 생태계 불안 등 국가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다"(정승일 사장)며 한전과 가스공사가 요금 인상을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정부는 물가 상승세와 국민 반발 여론을 의식해 1분기에 '전기료 소폭 인상, 가스료 동결'로 결정했다. 더불어 2분기 전기‧가스 요금에 대해서는 40일 넘게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다.

당정이 전기‧가스요금 인상의 전제 조건이었던 에너지 공기업들의 자구책을 받아들이면 이르면 다음 주 초 전기요금 인상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당정협의회에서 2분기 전기요금이 결정되면 한전 이사회와 산업부 산하 전기위원회가 열리고, 전기위의 심의·의결을 거쳐 산업부 장관이 고시하면 최종 확정된다.

이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