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재판 나온 일본인 변호사 "심각히 침해된 인권 우선 판단해야"

입력
2023.05.11 23:11
일본 법원서 첫 배상 판단 받은 변호사
"인권 문제는 국가 면제 적용 않는 예외"
이용수 할머니 "너무 억울하고 서러워"

일본 법정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을 승소로 이끈 경험이 있는 일본인 변호사가 한국 법원에 출석해 일본 법원 판결을 비판하면서 재판부에 전향적 판단을 요청해 주목을 받았다. 국제관습법 원칙론보다는 심각히 유린 당한 인권을 기준으로 판단해달라는 얘기였다.

야마모토 세이타(70) 변호사는 11일 서울고법 민사33부(부장 구회근 황성미 허익수) 재판부 심리로 열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등의 일본 정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법정에선 '주권 면제'(국가면제) 적용 여부에 관한 야마모토 변호사의 설명에 관심이 쏠렸다. 주권 면제는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 관습법으로, 국가 면제로도 불린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국제법상 원칙인 주권 면제를 토대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야마모토 변호사는 법정에서 주권 면제 원칙보다 중대한 인권침해 여부를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 면제나 주권 면제가 나름 존재 의의는 있지만 위안부 피해 같은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의 마지막 구제 수단이 국내 법원이라면 재판 받을 피해자 권리가 국가 면제 원칙보다 우선한다"고 밝혔다. 그는 "위안부 피해는 인권 구제를 위해 사법 접근권을 보장하며 주권 면제 적용을 제한해야 하는 전형적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불법행위를 주권 면제에서 예외로 제외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 아니라고 피력했다. 야마모토 변호사는 "2012년 국제사법재판소(ICJ) '페리니' 판결이 나온 뒤 10년 이상 지났고 그동안 상당한 변화도 있었다"며 "당시 ICJ 판결을 그대로 적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페리니 판결은 국가 면제를 적용해 이탈리아인 페리니에 대한 독일의 2차 세계대전 중 불법행위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이다. 그는 "인권을 위해 외국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해선 국가 면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예외는 이미 다수 국가에서 채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야마모토 변호사는 이날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법원에 새로 소송을 제기하면 승소 가능성이 있느냐는 재판부 질문에는 "없다"고 답했다. 그는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위안부 피해자 개인이 소송으로 청구권을 다툴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고, 그 내용이 현재 일본 정부 입장"이라 말했다. 당시 최고재판소는 1951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과 연합국이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하며 맺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판단 근거로 내세웠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야마모토 변호사는 "그 조약에는 '민사소송을 할 수 없다'는 문구가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며 "명백히 조약 문구를 무시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전후 보상 관련 전문가인 야마모토 변호사는 1992년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피해자 등 1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한 소송에서 피해자 측을 대리해 일본 시노모세키(下關) 법원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2018년 개봉한 영화 '허스토리'의 소재로도 다뤄졌다. 확정 판결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일본 법원이 배상 책임을 인정한 유일한 사례로 남았다.

그는 재판이 끝난 뒤 "한국 법원이 용기를 갖고 주권 면제보다 인권 기준에서 판단해주길 바란다"며 "한국이 득보고 일본이 손해보는 게 아니라 피해자 개인과 가해 국가 사이의 관점에서 인권을 중시한 판단이 늘어날수록 피해자들에게 엄청난 용기를 줄 것"이라 말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이날 "14살에 일본에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해 지금까지 몸이 많이 아프고 수술도 받았다"며 "일본 정부가 사죄하고 배상하라고 30년 넘게 외쳤는데, 일본은 아무 대책도 안 내놓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국에) 와서 '마음이 아팠다'는 거짓말만 한다. 너무 억울하고 서럽다"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손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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