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이 러시아를 제재할 새로운 카드로 '러시아산 다이아몬드 수출 봉쇄'를 추진하고 있다. 아프리카 내전 지역에서 채굴된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수익이 전쟁 자금으로 쓰이는 다이아몬드)’의 거래를 국제기구들이 금지하고 있는 데 착안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을 내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숨은 돈줄'을 끊겠다는 의도다.
10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주요 7개국(G7)이 러시아산 다이아몬드 판매에 제약을 두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엔 무역 통계에 따르면, 2021년 러시아의 다이아몬드 원석 수출은 40억 달러(약 5조2,980억 원) 규모다. 러시아는 주로 보조 장식용으로 쓰이는 작은 다이아몬드 원석을 시베리아 광산에서 채굴해 인도 등에 공급한다.
문제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팔아 챙긴 수익이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의 전쟁 비용에 충당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다이아몬드 채굴회사인 러시아 ‘알로사’의 지분 3분의 2는 국가기관에 있다. 다이아몬드 판매 자금이 러시아 정부로 흘러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G7은 기존의 대러 제재 항목에 다이아몬드를 추가하는 쪽으로 이미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FT는 관련 성명 초안을 확인했다면서 "개별 보석의 출처까지 추적하는, 아예 새로운 체계를 만든다"고 전했다. 현재는 분쟁 지역에서 채굴된 다이아몬드의 수출을 금하는 ‘킴벌리 프로세스(KPCS)’가 유엔 지원하에 2003년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유통 단위 추적이어서 원산지를 세탁할 경우엔 잡아내기 쉽지 않다.
인도 기업인 ‘로지 블루 인디아’의 전무이사이자 다이아몬드 딜러인 러셀 메타는 “러시아산처럼 크기가 작은 원석은 추적이 어렵기 때문에 다른 나라 광산에서 캔 원석과 섞어 ‘혼합 출처’로 KPCS 승인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또 KPCS는 원석 단계까지만 적용되는데, 밀수를 통해 타국으로 옮겨져 인도나 중국 등에서 세공되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한계도 있다.
무엇보다 러시아는 KPCS 서명국임에도, 현재로선 다이아몬드 원석 수출 제약을 받지 않는다. 벨기에 싱크탱크인 국제평화정보서비스의 한스 메르케트 연구원은 “KPCS가 러시아를 (아프리카 국가와 같은) ‘분쟁 지역’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G7이 새로운 ‘블러드 다이아몬드 방지체제’를 논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글로벌 보석 업체들은 ‘러시아 다이아몬드’에서 발을 빼고 있다. FT는 “최근 미국 브랜드인 ‘티파니앤코’ 등이 반지 장식에 사용되는 작은 다이아몬드와 관련, 러시아산과 비(非)러시아산을 분리한 뒤 러시아산은 퇴출하라고 공급자 쪽에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번 제재가 현실화하면 전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에 미칠 영향도 작지 않다. 대표적인 곳이 다이아몬드 가공 중심지인 인도다.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거래소인 BDB의 아눕 메타 회장은 “러시아산 다이아몬드는 (가공 산업 분야) 인도 일자리의 60%를 차지한다”며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 디네쉬 나바디야 인도 다이아몬드연구소장도 “(주요 고객인 서방 브랜드가) 러시아산 원석을 원하지 않는다면 비용(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사용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