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1,500년 전 그림이래.” “대박이다!”
지난 9일 오후 경북 경주시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어둑한 조명 아래로 갈색 바탕에 하얀 말이 그려진 그림이 관람객들을 반겼다. 경주 신라시대 고분인 천마총에서 지난 1973년 발굴된 ‘천마도’다. 당장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듯한 천마의 자태에 관람객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서울에서 온 허지원(22)씨는 “천마도가 전시된다는 소식에 경주로 여행을 왔다”며 “천마도를 통해서 천 년 전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 현존하는 신라시대 천마도 다섯 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이달 4일부터 7월 16일까지 천마총 발굴 50주년을 기념하는 ‘천마, 다시 만나다’ 전시를 연다. 천마총에서 발굴된 '천마도' 등 천마가 그려지거나 조각돼 있는 말다래(말이 달릴 때 흙이 튀지 않도록 말안장 양쪽에 늘어뜨리는 판) 3종 이외에도 일제강점기 금령총, 금관총에서 나온 말다래 2종을 함께 선보인다.
보존 상태가 완벽해 일반적으로 ‘천마도’로 알려진 ‘천마그림 말다래 II’는 마지막 전시가 열렸던 2014년을 포함해 이제까지 세 번밖에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말다래 II’는 유물보호를 위해 다음 달 11일까지만 공개된다. ‘말다래 I’을 7월 16일까지 교체해 전시한다. 천마도들은 1,5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유물들로 빛에 취약한 탓에 평소에는 수장고에 보관된다. 현재 특별전시관 내부는 유물 보존에 최적인 온도 21~23도, 습도 50~60%에 맞춰져 있어 다소 답답한 느낌이 들 정도다. 천마도 촬영은 당연히 금지돼 있다. 이런 제약에도 전시를 찾은 관람객은 9일까지 3만3,800명을 넘었다.
천마총 발굴은 한국 고고학 역사의 일대 사건이다. 발굴이 처음 추진된 것은 ‘98호분(황남대총)’이었다. 발굴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박정희 정권은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1971년)을 세우고 경주를 정비하면서 대형 고분인 98호분의 발굴을 추진했다. 그러나 실무자들은 그보다 작은 ‘155호분(천마총)’ 발굴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대형 고분을 잘못 열었다가 복원에 실패할까 우려했던 것이다. 천마총 발굴은 황남대총 발굴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던 셈이다. 김정기 당시 문화재관리국 연구실장을 단장으로 조사단은 1973년 4월 본격적으로 발굴에 착수한다. 천마총 발굴은 시험 사업 성격으로 시작됐지만 발굴 과정에서 '대어'들이 쏟아진다. 고분 상부에서 마구가 출토되더니 금관(7월 25일)에 이어 8월 22일에는 드디어 천마가 그려진 말다래 3점이 발견됐다. 현재까지 천마도는 현존하는 거의 유일한 신라시대 회화로 남아 있다.
당시 금동 천마 장식을 붙인 대나무 말다래('천마무늬 말다래')가 가장 상층부에서 발견됐는데 조사단은 이것을 굳힌 뒤 발굴하려고 약품을 발랐다. 문제는 그 아래 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어진 말다래 I과 말다래 II가 포개져 나타난 것이다. 말다래 I에는 약품이 스며들면서 표면이 훼손됐다. 조사단은 그나마 온전한 말다래 II라도 수습하기 위해 합판, 종이, 함석판 등 여러 재질의 판으로 분리를 시도하는 등 백방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런 조사단의 고투의 결과 지금 생생한 '천마도'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천마도로 알려진 ‘말다래 II’는 현재도 오묘한 빛깔을 뽐내고 있다. 자작나무 껍질에 흰색으로 그려진 천마가 선명하다. 여기에 그려진 도상들은 모두 천상계를 표현한다. 전시를 기획한 정효은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발 주변의 무늬는 구름이나 날개로 분석된다. 테두리를 따라서 그려진 인동당초문(덩굴무늬)은 고구려 벽화에서, 네 귀퉁이에 그려진 흰 무늬는 실크로드 문화권에서 자주 등장한다.
정 학예연구사는 “건국 설화에도 백마가 등장하는 등 신라에서는 말이 신성한 동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천마는 서역의 페가수스가 한반도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기원전 7세기에 그리스에서 등장한 페가수스가 중국을 거쳐서 전해졌다는 것이다. 사실 천마도는 신라뿐 아니라 고대 동북아시아에서 유행하는 말 도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5세기 초에 만들어진 고구려 유적인 덕흥리 고분군에는 그림과 함께 '천마지상(天馬之像)' 명문까지 새겨져 있다.
한때는 뿔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천마가 '기린(麒麟·사슴을 닮은 고대 중국의 상상의 동물)'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국립경주박물관이 2015년 적외선 사진 촬영 결과 등을 담은 ‘천마총 출토 천마문 장니’ 보고서를 내면서 현재는 천마의 정체는 말로 굳어졌다는 게 박물관의 설명이다. 사실 조각조각밖에 남아 있지 않은 금관총, 금령총 발굴 말다래의 천마는 천마초에서 발굴된 말다래 I·II의 정체가 명확히 규명되기 전까지는 무슨 동물인지 불분명했다. 발굴 당시에는 이들은 애초에 ‘괴수 무늬’로 기록됐다.
우여곡절 끝에 모습을 드러낸 천마도. 현대 한국인들에게 그 매력은 무엇일까. 부산에서 온 서한규(46)씨는 이렇게 말했다. “천마도가 전시될 때마다 어디로든 보러 다녔어요. 실물은 모사도랑은 차이가 있거든요. 진본은 더 낡았고 세월의 흔적이 보이지만 뭔가 다르죠. 뭔가 ‘찌릿’한 것이 있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