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인 A와 B는 학교의 체험학습활동으로 교사, 학생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열린 캠프에 참여해서, 물놀이를 하다 조류에 휩쓸려 사망하였다. 캠프 운영자와 직원들은 수상안전요원이나 응급조치사 자격이 없었고, 캠프에는 구명장비도 없었으며, 캠프교관은 수영을 할 줄 모른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구조를 거부하기도 하였다. 유족들은 학교와 캠프운영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2012년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인데, 유족들은 소송에서 일부 승소하였다. 그렇다면 같은 사고로 사망한 중학생 A와 B가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액수는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사건에서 A는 B가 받을 수 있던 배상액의 70% 정도만 받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B는 비장애인이고, A는 지적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나이의 학생이 같은 사고로 안타깝게 사망하였는데 배상액수가 다르다니, 과연 이것은 합당한 결과일까?
상해 또는 사망 사건의 손해배상액수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미래에 발생할 것이 예상되었으나 받지 못하게 된 미래 손해인 일실이익(逸失利益·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경우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익)이다. 법원은 사고 당시에 소득이 없는 사람(학생, 무직자)의 경우에는 보통 일용노임을 기준으로 미래의 손해를 산정한다. 그러나 여러 판결에서 소득이 없는 사람이 장애인인 경우에는 이러한 손해액을 아예 인정하지 않거나 비장애인보다 낮게 인정하고 있다. 결국은 A의 경우처럼, 같은 사고로 사망을 하여도,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적은 액수를 배상받는 결과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2020년경부터 장애인 시설에서 학대로 사망한 장애인의 유족들을 대리하여 학대를 주도한 시설장과 시설의 불법적 운영을 방치했던 지자체를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에 참여했다. 1심과 2심에서 일부 승소하였지만 사망한 장애인이 중증장애인이고 앞으로도 일할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일실이익을 하나도 인정받지 못했고, 지금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억울한 사고로 목숨을 잃었지만 일실이익을 전혀 인정받지 못하니 배상액수는 비장애인과 비교할 때 4분의 1 수준이다. 생명은 모두 소중하지만, 침해에 대한 배상이 장애 여부에 따라 너무 다르다.
장애인에 대한 낮은 배상은 장애인의 신체와 생명을 경시하는 결과를 낳을까 봐 우려스럽다. 사고를 당하고 학대를 당하는 일은 비장애인보다 장애인에게 더 자주 일어난다. 캐나다의 한 연구에 따르면,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폭력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2배 높고, 지적장애인의 경우에는 무려 4배나 높다고 한다. 장애 때문에 피해를 입기 쉬운 장애인이 피해자가 되어도 충분히 배상받지 못한다면 이러한 피해는 앞으로도 줄어들지 않을지 모른다.
또 장애가 심하다는 이유로 앞으로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가정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장애 관련 법들은 장애인의 평등하고 완전한 사회참여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기술의 발달, 사회적 인식의 변화로 노동의 개념은 점차 진화하여, 장애인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사회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노동으로 인정하는 움직임이 있다. 장애인을 동등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식한다면, 장애인의 생명침해에 대한 배상도 평등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생명침해에 대한 배상이 과연 공평하고 합당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질문을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