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가 ‘괴물 폭염’으로 펄펄 끓는다. 지난달 섭씨 40도 안팎의 때 이른 더위가 찾아온 이후 한 달째 수은주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탐욕이 부른 이상기후가 인간의 생존을 점점 더 강하게 위협하고 있다.
8일 방콕포스트에 따르면, 태국에서는 대다수 도시가 섭씨 40도를 넘어서는 등 사상 최악의 폭염이 3주째 이어지고 있다. 습도를 감안한 체감온도가 최근 50도까지 올랐다. 태국 기상청은 “7일 동부 촌부리와 방콕 체감온도가 각각 섭씨 53도, 52.7도, 대표 휴양지 푸껫은 51.1도까지 치솟았다”고 밝혔다.
태국 중부 사뭇사콘주의 50대 남성은 음료를 사러 나갔다가 열사병으로 숨졌고, 방콕의 총선 사전투표소 두 곳에서는 유권자와 선거 관리자 17명이 실신했다. 시 당국은 부랴부랴 투표소에 살수차와 대형선풍기를 설치했다.
베트남은 사상 최고 기온을 갈아 치웠다. 국립기상예보기관은 7일 북부 탄호아성 기온이 섭씨 44.1도까지 올라 역대 가장 높은 온도를 경신했다고 밝혔다. 이전 기록은 43.4도(2019년 4월)였다. 정부는 “한낮에는 실내에 머물러 달라”고 당부했다.
섭씨 40도를 웃돌아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말레이시아에서도 사망자가 나왔다. 11세 소년과 19개월 된 아이가 야외에서 열사병과 탈수증으로 목숨을 잃으면서 교육부는 3일 전국 초등학교에 모든 야외 활동을 잠정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온라인 등교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기 시작했다. 무더위에 전력 사용이 폭증하자 말레이시아 국영전력공사는 △암막 커튼 치기 △건조기 대신 햇볕에 빨래 말리기 △냉장고 용량의 3분의 2만 채우기 등 전기 절약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난달 초부터 폭염이 시작된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에도 섭씨 44, 45도의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보통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의 4월 기온은 30도 중·후반이고, 5월 우기가 찾아오면 한풀 꺾인다. 올해는 기후변화로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엘니뇨(적도 지역의 바닷물 온도가 상승하는 현상)까지 겹치면서 강우량이 줄고 기온은 오르면서 최악의 '봄 폭염'이 닥쳤다.
각국엔 비상이 걸렸다. 식수와 농업용수가 마르면서 필리핀은 국가수자원위원회가 비상계획을 가동해 지하수 생산량을 늘리려 고전 중이다. 필리핀은 2019년 수도 마닐라의 주요 저수지 수위가 사상 최저를 기록하며 1만 가구에 물 공급이 끊긴 적이 있다.
태국 국가수자원국은 “물을 절약하라”고 국민들에게 촉구했고, 말레이시아는 기상청과 공군이 페낭섬 댐 인근 상공에 ‘구름 씨앗(인공강우 물질)’을 뿌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전했다. 인도에서는 정책적으로 폭염에 대응하는 ‘최고열관리책임자(CHO·Chief Heat Officer)’ 직위 신설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폭염 때문에 커피, 설탕, 팜유 등 지역 작물 생산도 줄어들 것”이라며 “아시아 대륙 남쪽에 닥친 잔인한 더위는 나머지 세계에 대한 자연의 경고”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