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동력비행에 성공한 비행기는 1차 대전을 거쳐 1920년대 여객시대를 맞이했다. 초창기 여객기는 폭격기를 개조한 18~20인승으로 항속거리도 짧았고 기류도 괴팍한 1,500m 안팎 저고도 항로를 오갔다. 승객들은 비행 공포증에다 멀미까지 견뎌야 했다. 부기장은 틈틈이 조종간을 놓고 승객에게 음료수와 멀미 봉투를 나눠줘야 했다. 1928년 독일항공이 사상 처음 기내서비스 전담 승무원을 채용했다. 당연히 ‘담력 센’ 남성이었다.
미국 아이오와주 크레스코(Cresco)의 만 25세 여성 간호사 엘런 처치(Ellen Church, 1904~1965)가 1930년 보잉항공운송사무소(UA 전신)를 찾아갔다. 자신을 승무원으로 채용하면 여성이라 승객들의 공포증도 덜어주고 간호사여서 멀미와 기타 응급상황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장담했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에 성공한 이듬해 태어나 카운티 박람회에서 비행기 서커스를 보면서 비행의 꿈을 꾸던 그였다. 고교를 졸업하고 간호사로 일하며 여가 시간에 비행 강습도 받았지만 여성이라 파일럿은 될 수 없었다. 승무원은 유일한 대안이었다.
세계 최초 여성 항공승무원이 된 그는 1930년 5월 15일 승객 14명을 태운 보잉80A 여객기로 캘리포니아 오클랜드를 이륙, 13곳을 경유해 시카고까지 가는 만 20시간 첫 임무를 완수했다.
그는 7명의 여성 승무원을 잇달아 채용해 훈련도 시켰다. 당시 채용 자격은 문화와 적재용량 등 제약 때문에 25세 미만 미혼에 키 163cm 몸무게 52kg 미만이어야 했다. 그들은 티켓 확인과 음료수 제공 외에 기내 청소와 좌석 고정볼트 점검도 해야 했다.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처치의 승무원 이력은 약 18개월 만에 끝났다. 그는 2차 대전 간호장교로 활약했고, 승마 중 낙마사고로 별세했다. 크레스코 시립 공항은 ‘엘런 처치 필드’로 명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