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13년간 사회학 강의를 했다. 사회학은, 거칠게 정의하자면 사회가 강요한 고정관념이 개인을 어떻게 괴롭히는지를 드러내는 학문인데, 전공이 아니라 교양으로 듣는 학생들은 지루해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그래서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례들을 많이 모았다. 이를 정리한 책이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동양북스·2018)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잘못된 믿음이 야기한 잘못된 결과를 모았다.
그런데 이 책이 ‘코로나 백신 음모론자’들의 커뮤니티에서 추천되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국가가 강요한 가치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설명한 지점은, 그러하니 백신 의무접종은 국가 폭력이자 전체주의적 사고라는 주장으로 매끄럽게 연결되었다.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생겼다는 고백도 이어졌다. 상상도 못 한 일이었지만 내 글은 그릇된 사고를 정당화하는 연료가 되어 있었다. 역시나, 세상 일은 간단명료하지 않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은 잘못된 믿음을 지닌 이들을 직접 만나는 철학자의 이야기다. '포스트트루스'(두리반·2019)에서 가짜 뉴스 전성시대를 야기한 요인들을 탐구한 리 매킨타이어는 과학 부정론자들 속으로 들어가 심지어 설득까지 한다. 지구가 둥글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의 학회에 참석해 그들의 논리를 발견하고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기후위기를 부정하고 백신을 거부하고 모든 GMO(유전자 변형식품)를 유해하다고 판단하는 사람 앞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한다.
저자가 상대를 존중하며 차근차근 과학적인 설득을 해 나가는 이유는 그들 역시 ‘과학적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신의 계시를 받아서가 아니라, 어떠어떠한 연구결과와 전문가 누구누구의 말들을 조합하여 나름의 이성적 사고를 한다는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음모론자인 사람이 있겠는가. 거짓정보를 차단하지 못한 사회에 책임이 있다면, 그들을 설득할 길은 빈정거림이 아니라 소통이다. 답답하다면서 ‘안 보면 그만’이라고 하는 사람이 (특히 한국에는) 많겠지만, 이야기가 안 통하는 사람을 마주하는 건 시간낭비라고 여기는 경우가 (역시나 한국에는) 많겠지만, 그럴수록 유사과학은 번창한다.
차별과 혐오를 비판하는 글을 주로 쓰고 강연을 하다 보면 ‘어떻게’ 타인에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궁금해하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그게 왜 혐오냐는 사람이 내 동료이고, 심지어 차별이 왜 문제냐는 극단주의자가 가족일 때 대화하는 법을 알려달라고 한다. 그때마다 모두의 삶에는 저마다의 강도와 속도가 있음을 유의하자고 말한다. 옳은 가치일지라도 그걸 풀어내는 방식이 ‘하나의 옳음’으로 규정될 수 있겠는가.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논쟁(arguments)이 아닌 이야기(stories)"(155쪽)임을 명심한다면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는 결코 끊어지지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