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강남구 한 빌딩에서 10대 여학생이 투신해 숨졌다. 여학생은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었다. 경찰 조사와 언론 취재를 통해 이곳에선 집단 괴롭힘, 극단적 선택 조장, 성(性) 착취 등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각종 범죄가 판쳤고, 여학생의 죽음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10대 여학생 두 명이 또 한강 다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이들 역시 우울증 갤러리에서 만난 관계였다. 정부가 폐쇄를 미루는 사이 커뮤니티 폐해로 인한 유사 사건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7일 경찰에 따르면, 5일 새벽 “서울 한남대교 북단에서 여성 두 명이 난간 바깥쪽으로 넘어가 있다”는 112 신고가 접수됐다. 17세, 15세 청소년들이었다. 당시 두 사람은 투신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라이브방송을 통해 심경 등을 토로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의 끈질긴 설득으로 이들은 뜻을 접었다. 소녀들은 우울증 갤러리에서 만나 친분을 쌓은 후 동반 투신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날 현장에는 갤러리 이용자인 성인 남성도 있었다. 그는 경찰 진술에서 “투신을 말리러 왔다”고 주장했다.
우울증 갤러리는 지난달 16일 10대 여학생이 SNS 라이브방송을 켜놓은 채 투신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심각성이 드러났다. “3년간 갤러리에서 10명 넘게 목숨을 끊었다” “성인 남성 회원들의 미성년자 성 착취가 비일비재했다” 등의 폭로가 줄을 이었다. 경찰은 곧장 갤러리 폐쇄를 요청했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추가 법률 검토가 필요하다”며 결정을 보류했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미온적 대응 탓에 하마터면 두 학생이 또 목숨을 잃을 뻔한 것이다.
투신을 시도한 A양은 취재진에게 “우울증 갤러리는 마음 털어놓을 곳이 없는 제게 집과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달리 갤러리는 정신적 안식처가 아니었다. 이용자들이 “너는 필요 없는 사람이다, 빨리 뛰어내려라”고 채근하자, A양은 진짜 죽으려 했다. 일부 이용자는 그의 사진을 무단으로 게시판에 올려 외모를 평가하는 등 ‘사이버불링(괴롭힘)’을 가하기도 했다. 앞서 3일 A양이 한 건물 옥상에서 투신 계획을 알리며 라이브방송을 진행할 때에도 “뛰든 말든 알빠(내가 알 바 아니다)” 등 죽음을 부추기는 글이 잇따랐다. 아예 ‘극단적 선택 함께할 사람 모집한다’는 취지의 글이 버젓이 올라오기도 했다.
우울증 갤러리에서 ‘그루밍(길들이기)’ 성범죄가 여전하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제보자는 “‘신대방팸’ 전신 SNS 단체카톡방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20대 남성이 지금도 여성 청소년들과 매주 만나고 다닌다”고 귀띔했다. 신대방팸은 미성년자 성 착취 의혹을 받는 오프라인 모임이다. 또 다른 갤러리 이용자도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접근해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신체 사진을 빌미로 협박하는 사람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갤러리를 맹신하고 의존하는 청소년들의 특성상 범죄를 차단하려면 현재로선 폐쇄가 유일한 해법으로 보인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온라인 자살 유해 정보가 누군가의 극단적 선택을 부르는 위험이 현실화했다”며 “(갤러리 차단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이용자들이 다크웹(비밀 웹사이트) 등 다른 유해사이트로 옮겨갈 가능성은 있지만, 일단 접근 자체를 불허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심위는 12일 통신자문특별위원회를 열어 갤러리 차단 여부를 심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