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사죄'나 '반성'은 이번에도 없었다. 기시다 총리는 7일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가슴 아프다"며 미안한 감정을 드러냈지만, 강제동원 문제를 포함해 과거사에 대한 '성의 있는 조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만 3월 회담 당시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며 두루뭉술하던 것과 비교하면 반걸음 정도 나아갔다.
이번 회담 초미의 관심은 과연 기시다 총리가 얼마나 구체적인 표현으로 과거사 문제를 다룰지에 쏠렸다. 그래야 진정성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에는 못 미쳤다. 기시다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1998년 10월 (김대중-오부치) 한일 공동선언"을 거론했다. '통절한 사죄와 반성'의 구절이 담긴 선언인데, 다만 그 내용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기시다 총리는 이어 "당시 혹독한 환경 속에서 수많은 분들이 매우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며 "제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콕 집어 강제동원 이슈를 건드리지 않고, 직접 사과도 없이, 애써 감정에 호소하는데 그친 셈이다. 복수의 한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와 일본 외무성은 윤 대통령이 먼저 밝힌 제3자 변제에 총리 본인의 언어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메시지를 내는 방안을 고심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추가적인 사과가 있어야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이 지속가능하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이날 기시다 총리의 유감표명은 '일본 총리'가 아닌 '개인'으로서 심정을 밝히는데 그쳐 여전히 한계를 드러냈다.
동시에 기시다 총리는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는 3월 회담 당시 발언을 반복했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기시다 총리가 계승한다는 담화에는 '후세대에게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지게 할 수 없다'고 한 아베 담화도 포함된다"면서 "이를 보더라도 일본이 추가적으로 사과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명시적인 사과를 얻어내기보다는 일본에 진정성 있는 조치를 장기적으로 견인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성에 차지 않는 기시다 총리의 발언과 달리, 한일 정상은 일단 이달 중순 주요7개국(G7) 정상회담을 계기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찾아 한국인 원폭피해자 위령비를 참배하기로 했다. 양국 정상의 동시 참배는 전례가 없다. 느슨하게나마 과거사 문제와 연결된 끈을 이어가기로 한 셈이다.
이에 대해 정부 핵심관계자는 "(일본이) 말과 행동으로 과거사에 대해 진정성을 보여주겠다는 표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반면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사과는 결국 책임의 인정과 이행, 그리고 재발 방지 노력이 같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면서 "(기시다 총리의 발언을) 사죄라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