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의사캐슬 3058’ 취재팀(강윤주·최나실·박지영·오세운·류호 기자)이 만난 젊은 의사와 의대생들은 부와 워라밸(일·삶 균형)을 향한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한 의대생은 “동기들과 돈 얘기를 가장 많이 한다”고 했다. 젊은 의학도들이 생명 다루는 과를 피해 ‘피안성’(피부과ㆍ안과ㆍ성형외과)으로 가려는 건 장고 끝에 내린 결정이다.
기사의 한 대목을 보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돈 많이 벌면서 내 시간도 챙기는 워라밸 직업. 다른 하나는 몸은 고된데 수입은 되레 적은 직업. 단 존경과 보람이 뒤따른다. 아마 대부분 전자를 고를 것인데, 젊은 의사들은 자기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사명감이 없다고 탓할 수 있나? 우리가 그 입장이라면 다르려나? 이들은 ‘합리적’이다. 자본주의에서 돈을 좇으려는 욕망을 욕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도 없다.
자,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합리성은 정의를 보장하지 않는다. 모든 젊은 의사가 합리적으로 행동함에도, 그 ‘합리의 총합’인 의사 수급은 비합리적 재앙(필수·지역의료 붕괴)을 향해 달려간다. 개별적으론 다 맞는 얘긴데 개별의 총합은 틀리게 되는 ‘구성의 오류’가 여기서 벌어진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절약의 역설과도 같다. 개별 경제 주체가 미래를 위해 소비 대신 절약(저축)하는 것은 합리적 선택이다. 그러나 이 총합인 국민경제 차원에서는 총수요 감소로 이어져 불황의 원인이 되고 만다.
의료 현장에서 합리와 합리가 더해져 비합리가 되는 이유는 어그러진 보상체계 때문이다. 왜곡된 분배구조를 그대로 둔 채 아무리 사명감과 정의로움을 말해 봐야 헛일이다. 의료시스템 개편은 인구보너스(젊은 인구가 많아 건보재정이 흑자로 유지)와 소수 의료인의 사명감으로 버티던 아름다운 시절이 끝났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수십 년간 한국 의료의 경쟁력이었던 ‘가성비’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의료시스템 개편은 대다수가 동의할 몇 가지 대원칙을 정하고, 그 원칙을 달성하기 위한 세부 수단을 고안하는 식이어야 한다. ①이대로 둘 수 없다(개편의 당위성). ②욕망은 막을 게 아니라 제대로 흐르게 해야 한다(보상체계 수정). ③젊은 의사가 바이탈과를 선택하는 것이 미친 짓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필수의료 중심 보상). ④필요시 인력 충원도 해야 한다(적정 수준의 의대 정원 증원). ⑤인력 충원만큼 편중 문제 해결도 필요하다(종합병원 중심의 확충). 이 정도 전제를 깔고 시작해야 한다.
원칙을 정했다면, 그때부턴 정밀해야 한다. “디테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윤석준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의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의대 정원이나 수가의 변화는 그 즉시 의료시장의 수급 변화로 이어지기에, 미래를 신중하게 예측해 보상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선의만으로 접근해선 안 되며 정확하고 냉정해야 한다.
보상체계를 정교하게 설계하지 못하면 애먼 곳에 불똥이 튄다. 선의에서 시작된 병사 봉급의 급상승(병장 월급 2017년 21만 원→올해 100만 원)이 부사관과 초급장교 구인난으로 이어진 사태 말이다. 여기서도 개인의 합리적 선택(간부 지원 기피)이 쌓여, 국방의 허리가 부실해지는 불의의 결과로 이어졌다.
의료시스템 개편에서도 욕망이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갈 작은 도랑들을 정밀하게 설계하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디테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