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의사도 사람… 주 100시간 일하는 젊은 의사 개인에게 관심 가져 주세요"

입력
2023.05.0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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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인터뷰


사람을 중심으로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의사들이) 필수의료 현장을 떠나는 이유는 개인의 어려움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의사 수급, 의료서비스 수급, 수가나 보상 같은 논의는 많은데, 그 안에서 일하는 의료인 개인에 대해선 크게 관심이 없어요.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회장은 4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의사 개인의 삶과 행복에 집중해야 필수의료 기피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대 정원 확대보다는 기존 전문의 인력의 재배치를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면허를 받은 모든 의사들이 가입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과 달리, 대전협은 전공의 과정을 밟고 있는 젊은 의사들로만 이뤄진 단체다. 예방의학과 3년차 전공의인 강 회장은 본보 인터뷰에서 필수의료를 피하고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 정재영(정신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등) '워라밸과'로만 몰릴 수밖에 없는 젊은 의사들의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젊은 의학도들이 왜 필수의료로 오지 않느냐며 '사명감'에만 호소해 봐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은 본보와 강 회장이 주고받은 일문일답.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이유는 뭘까요?

"과도한 근로시간, 인기과에 비해 낮은 소득, 의료소송 리스크를 꼽을 수 있죠. 의사들이 전공을 선택할 때 따지는 조건도 다른 시민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요. 필수과 전공의들은 주당 근무시간이 100시간에 육박하고, 전문의 취득 후에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중증외상 전문의) 이국종 교수님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의사들처럼 평생을 병원에서 바치며 살아야 하는 거죠. 게다가 바이탈과는 전공을 살리려면 대학병원에 남아야 하는데, 개원의에 비해 급여가 상대적으로 낮아요.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행위를 하니 소송 위험도 크죠."

-환자들은 의료소송 해 봤자 의사들이 이긴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막상 의사들이 느끼는 부담은 다른가 보죠?

"사실 의사는 신이 아니죠. 환자를 살리기 위해 정말 노력해도, 현대 의학의 한계 때문에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뇌출혈은 아무리 의사가 최선을 다해도 기본적으로 사망률이 높은 질환이에요. 물론 환자가 입증 책임이 있고, 가족의 죽음을 납득하기 어려운 보호자들 입장은 이해 됩니다. 다만 2018년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구속되고, 2020년엔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가 법정 구속됐지만 결국 둘 다 무죄가 나왔어요. 젊은 의사들은 그걸 보면서 '필수의료를 택하면 나도 저런 일에 얽힐 수 있구나'라는 심리적 압박이 생긴 것 같아요."

-소송 위험을 반영해 필수의료 수가를 높이면 어떨까요?

"돈으로 해결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대신 일차적으로 형사소송을 대신할 분쟁 조정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결국 무죄로 끝난다고 해도, 소송은 경험하는 것 자체가 개인에겐 극심한 스트레스입니다. 실제로 한국은 의료 관련 형사 소송 비율이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환자 입장에서도 다른 분쟁 해소 방안이 없으니 결국 소송으로 가는 거죠. 소송으로 가기 전 배상이나 합의로 해결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이런 식으로 소송 리스크를 줄이면 필수과 지원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의사들의 지방 기피? 요즘 젊은 세대가 지방에 가지 않으려는 이유와 뭐가 다를까요?

-젊은 의사들이 지방 근무를 기피하는 이유는 뭔가요?

"지방 기피는 보편적인 청년 문제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수도권과 지방의 생활 인프라 차이 등 요즘 젊은 세대가 지방을 기피하는 이유와 똑같다고 봅니다. 그래도 의사로서 특수성을 뽑아본다면, 지방 공공의료원의 경우 의사가 전문성을 살려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못 되는 것 같아요. 의사만 있다고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다른 보조인력이나 시설, 장비가 필요한데 이 분야에 대한 투자가 미비합니다."

-별도 정원으로 지역 근무를 의무화하는 지역의사제가 지방 의사 확충에 도움이 될 거라고 보나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의료 공급자인 의사 입장에서 수용성이 낮아요. 오히려 기존에 지방에 근무하던 의사들도 떠날 수 있다고 봅니다. 정부가 강제로 10년 간 한 지역에 있도록 하는 것 자체가 '아 지방엔 미래가 없구나'라는 좋지 않은 시그널을 줄 수 있어요. (지역의사제) 대신 지역인재 전형이 효과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지역 의사 확충 방안으로 '원래 그 지역에 살던 사람을 뽑는 것'을 제시했어요. 수도권 출신은 지방의대를 가도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데, 원래 그 지역에 연고가 있다면 그대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죠."

-필수의료, 지방 기피 관련해서 '그래도 의사가 사명감을 가져야지'라는 비판이 있는데요?

"현재 상황을 사명감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명감을 가지고 필수의료를 선택했던 분들도 근로시간과 급여 등의 이유로 현장을 떠나고 있어요. 지금 상황에서 사명감을 더 강요할 순 없어요. 사실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의대에 입학하기보단, 어떤 게 내 삶에서 더 나은 선택일까 생각하는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과연 의사 수만 늘린다고 필요한 곳에 의사가 충원될까요?

-의대 정원 확대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실 필수의료과의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는 OECD 평균과 비슷하거나 더 많아요. 그럼에도 의사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이들이 개원가에서 자기 전문과목이 아닌 진료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예를 들면 흉부외과 전문의가 모발클리닉을 하는 것) 정원을 늘리자는 쪽은 낙수효과(의대 정원을 늘리면 어떻게든 필수과 의사가 늘어난다)를 바라는 것 같은데, 이 상황에선 정원을 늘려도 인기과나 피부미용 업계로 빠질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

-그럼 필수의료 회복을 위한 대전협의 대안은 뭔가요?

"기존 전문의 인력 재배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장을 떠난 필수과 전문의들이 종합병원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해요. 필수과 의사들이 현장을 떠나는 건 급여나 소송 리스크도 있지만, 적성을 살릴 수 있는 대학병원 일자리 자체가 적은 탓도 있거든요."

-대학병원 일자리가 적은 이유는 뭔가요?

"필수과는 보험진료를 하기 때문에 수익이 잘 나지 않는 영역이고, 전공의라는 값싼 인력이 있기 때문이죠. 사실 전문의는 2차 이상의 병원에서 일해야 하는데, 현재는 가장 초급 의사인 전공의가 종합병원에서 위중한 환자를 보고, 전문의가 1차의원에서 진료하는 모순적 상황인 거죠. 병원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값싼 전공의 인력으로 운영하려고 하는 게 문제입니다."

-전문의를 고용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있나요?

"병상 당 전문의·전공의 인력기준을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 1대 300인 병상 당 입원전담전문의 수를 1대 100까지 낮추고, 전공의가 담당하는 환자 수도 1대 15 정도로 제한해 병원이 부족한 인력을 전문의로 채워넣도록 해야 합니다. 간호등급제(간호사 인력을 많이 채용한 병원에 인센티브를 더 많이 주는 제도)처럼, 병상 당 전문의 비율이 높으면 가산수가를 주는 방안도 있습니다. 또 모든 의사의 24시간 이상 연속근무를 제한해 근로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의사 근로시간을 줄이려면 의사가 더 필요한 것 아닌가요?

"있는 전문의를 잘 활용하면 됩니다. 지금 개원가로 나간 전문의들을 종합병원이 더 고용한다면 근로시간 단축으로 필요한 인력을 채워 넣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후에도 의사가 부족하다면 그 때 정원확대를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보다 종합병원 급여를 올리고 근로조건을 개선하면 개원가로 나갔던 전문의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요.

-개원을 하면 돈을 더 많이 버는데, 종합병원이 임금 경쟁력이 있을까요?

"사실 개원하면 대출도 받아야 하고 경영에도 신경 써야 해 부담이 많이 됩니다. 모든 의사들이 개원만을 선호하지는 않아요. 필수과 의사들이 전공을 살리면서 적절한 급여 생활자로 살아가고 싶어도 그런 일자리가 없어서 개원가로 나가는 겁니다."

-수가를 올리면 의사에게 직접 혜택이 갈까요?

"수가는 기관(병원)에 지급되는 게 맞아요. 다만 전문의 인력 기준을 확립하고 거기에 수가 연동을 시킨다면, 병원들 사이의 고용 경쟁이 생겨 의사 개인에게도 보상이 돌아갈 수는 있어요. 아무런 기준 없이 수가만 올려준다면 분원 설립 등 병원 이익에만 도움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필수의료 수가를 올려줘야 하지만 건보 재정 부담도 걱정인데요.

"어느 정도의 보험료율 상승은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한국은 급여의 7%가 건보료인데, 독일이나 프랑스는 15%입니다.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앞으로 보험료 상승이 필요하고, 필수의료 관련해선 고령화로 인해 수요가 증가할 것이기에 세금으로 보조하는 부분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의사들이 툭하면 시민 목숨을 담보로 파업한다는 비판도 있어요.

"젊은 의사들도 의료 대란은 원치 않고, 협의를 희망합니다. 현장에서 불편이 생기지 않도록 갈등이 잘 조정됐으면 좋겠고, 국민 건강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싶습니다. 다만 파업 자체는 노동자의 기본권이기 때문에 저희도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권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협은 노조가 아니라서, 파업권이 보장되는 단체는 아니지 않나요?

"사실 전공의만 해도 4년 계약직 피고용자이기 때문에 불안정한 신분 속에서 노조를 만들긴 어렵습니다.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는 만드는데 차이가 있어요. 간호사 위주로 구성된 보건의료노조는 매년 파업을 논의하거나 실제로 실행하는데, 의사는 20년 간 3번 정도밖에 파업하지 않았어요."

-전공의(현재 주80시간 상한) 근무시간은 몇 시간이 적당하다고 보나요?

"52시간이 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내과계 60시간, 외과계 70시간을 요구하고 있어요. 미국 전공의가 이 정도 근무하고, 유럽은 근무시간이 더 짧아요. 복지부는 의사가 주 50시간을 근무하고 있고 이를 40시간으로 줄이려면 의사가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계산에 전체 의사의 10%인 전공의는 빠져 있습니다."

박지영 기자
류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