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시상식 수상소감은 배우 황정민 전과 후로 나뉘는 듯하다. 2005년 ‘너는 내 운명’으로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항상 사람들한테 그래요.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왜냐하면 60여 명 스태프와 배우들이 멋진 밥상을 차려놔요. 그럼 저는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거든요.” 그 이전엔 이렇게 진솔하면서도 겸손한 수상소감이 없지 않았을까.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알츠하이머 환자를 연기한 김혜자는 2019년 백상예술대상 대상을 받고 “우리는 위로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고 운을 뗐다. 그러고는 꼬깃꼬깃 찢어 온 드라마 대본을 읽는 것으로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당신은 이 모든 걸 누릴 자격이 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말라”는 삶이 힘든 이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해외영화제 수상소감은 세계적인 화제를 낳는다. ‘기생충’으로 2020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쥔 봉준호는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마틴 스코세이지 등 함께 후보에 오른 감독들에게 일일이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미나리’ 윤여정은 영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고 “고상한 척(snobbish)한다고 알려진 영국인들에게 인정받아 기쁘다”는 익살스러운 소감을 남겼다. 3월 60대 나이에 아시아계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미셸 여(양자경)는 또래 여성들을 향해 “당신의 황금기가 지났다는 남의 말 따위에 신경 쓰지 말라”고 외쳤다.
□한 문화평론가가 “품격이 없다”고 혹평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박은빈의 백상예술대상 수상소감을 들어봤다. 나는 배우로서의 책임감과 고뇌가 절절히 묻어난 이 소감이 역대 최고였다고 감히 말하겠다. 그 평론가 눈에 “울고불고”만 보인 것은 식견이 딱 그만큼이어서일 테니 무시하는 편이 낫겠다. 아직 못 들은 이들을 위해 울림 깊은 몇 구절을 남긴다. “우영우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겐 큰 상처가 될 수 있겠다 싶어 많이 두려웠어요.” “자폐인에 대해 스쳐 가는 생각들이 혹시 편견에서 기인하는 것 아닌지 매 순간 검증이 필요했어요.” “각자 고유한 특성들을 다채로움으로 인식할 수 있길 바라며 연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