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전용도로 못 달리는 초소형 전기차... 누가 가로 막았나 [나도 강변북로 달리고 싶다]

입력
2023.05.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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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소형 전기차, 자동차지만 전용도로 진입 금지
업계, 안전장치 보완·실증으로 필요성 증명
부처 논의 더뎌…"초소형 자동차 생태계 위기"


"초소형 전기차는 한 푼이 아까운 소상공인들한테 없어선 안 될 이동수단인데도 오래된 규제 때문에 무용지물이 되고 있습니다."
권오금 전국자영업소상공인중앙회 부회장


서울에서 커튼 및 블라인드를 제작·판매하는 권오금(64) 전국자영업소상공인중앙회 부회장은 2020년 초소형 전기 화물차를 마련했다. 주로 커튼을 고객에게 배달해야 하는 입장에서 초소형 전기 화물차는 ①보조금도 받을 수 있고 ②유지·연료비도 저렴하고 ③오토바이보다 안전하면서도 ④기동성도 좋아 야무지게 효자 노릇을 해주고 있다. 원래 판매가는 1,500만~2,200만 원대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하는 보조금 혜택을 받으면 400만~900만 원에 살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경기 지역이나 서울시 바깥으로 배달을 해야 할 땐 초소형 전기 화물차를 이용할 수 없어 화물 택배비로 십수만 원을 써야 한다. 초소형 전기차는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동부간선도로 등 서울 시내 자동차전용도로를 달릴 수 없기 때문이다. 권 부회장은 19일 "양재동 꽃시장에서 서울 전역으로 배달하는 화훼업종 소상공인의 경우 강변북로를 탈 수 없어 시내에서 10~20분을 허비해야 한다"며 "소상공인들의 요청을 받은 자동차 업체들이 안전성이 좋아진 초소형 전기차를 만들고 있지만 제대로 이용할 수 없어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판매 상승세였지만…전용도로 금지 걸림돌


초소형 전기차가 생계유지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상공인들의 이동수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보급 확대에 제동이 걸렸다. 국내 자동차 중소기업 마스타도 지난해부터 초소형 전기 화물차 '마스타 힘'을 생산하지만 판매에 애를 먹고 있다. 자동차전용도로 진입 금지 조치 때문이다. 자동차전용도로가 없는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는 도로법에서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제외한 화물차, 승합차 등 자동차만 달릴 수 있는 도로를 설정하고 최저 속도 시속 30km, 최고 속도는 시속 80km(서울의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주영진 상무는 "관심을 보이던 자영업자들도 자동차전용도로를 달릴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구매를 망설인다"며 "이런 규제가 국내에서 소형 전기차의 저변을 넓히는 데 발목을 잡고 해외 수출을 진행할 때도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초소형 자동차는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에서 경차보다 작은 차종으로 분류된다. 먼저 ①내연 기관 차량의 경우 배기량 250cc 이하·전기차는 최고 정격 출력이 15kW 이하②길이와 높이는 경차와 같지만 너비는 1.5m로 경차보다 10cm 더 적고 무게는 승용차·화물차가 각각 600kg·750kg 이하, ③최고 속도는 시속 80km 이하여야 한다. 올해 기준 마스타전기차, 쎄보모빌리티 등 9개 중소 자동차업체가 초소형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누적 판매 대수는 1만668대에 이른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초소형 전기차 시장은 2029년 221억1,000만 달러(약 29조4,900억 원)까지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초소형 전기차 '홍광 미니'는 2021년 중국 내에서 39만5,451대가 팔려 중국 내 전기차 판매 순위 1위에 올랐을 정도다. 지난해 국내에서도 초소형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35% 증가하고 있지만 해외 시장에 비해 성장 속도는 더디다. 한국스마트이모빌리티협회에 따르면 국내 초소형 전기차 판매량은 자동차전용도로 진입 금지 제도가 도입된 2018년 1,917대로 급증한 이후 5년째 2,500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안전성 검증 안 돼"…전용도로 진입금지


국토교통부는 2018년 자동차 분류 체계에 초소형 자동차 규정을 새로 만들면서 경찰청에 초소형 전기차의 자동차전용도로 진입금지 조치를 요청했다. 당시만 해도 충돌 시험 등 기존 자동차들에 적용했던 안전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초소형 자동차 제조 기업들은 이듬해인 2019년 생산한 초소형 전기 화물차에 추가로 수십억 원 들여 연구개발(R&D)를 진행해 다양한 안전장치를 넣었다. 안전장치가 전무한 해외 초소형 전기차들과 달리 에어백과 ABS(브레이크 잠김 방지 시스템) 등을 설치해 '자동차전용도로를 주행해도 위험하지 않고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2020년 국토교통부 산하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충돌 시험을 실시한 결과 모닝 등 일반 경차의 80% 수준에 달하는 안전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규제가 생존으로 직결…"구체적 기준 마련해야"


그러나 경찰은 여전히 국토부 요청을 근거로 자동차전용도로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규제를 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했는데도 국토부와 경찰청은 몇 년째 서로에게 공을 떠넘기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해 11월 중소기업 옴부즈맨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국토부의 자동차 충돌 안전성 평가 후 성능 기준 보완을 전제로 보완된 차량을 대상으로 향후 자동차전용도로 운행 허용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토부에서 안전성을 인정하면 허용해 주겠다는 뜻이다. 반면 국토부는 "전용도로 주행 허용은 엄연히 경찰청 소관인 만큼 개입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이 같은 국토부의 규제가 초소형 자동차업체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됐다는 점이다. 주로 가까운 곳에 배달을 하는 대형마트와 우체국, 자영업자들이 초소형 전기 화물차로 이동하고 싶어도 전용도로를 갈 수 없어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초소형 전기차 생산업체 관계자는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서 장사하는 자영업자는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동호대교를 건널 수 없어 주문을 포기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대문구 홍제동에서 가좌동으로 배달을 갈 경우 내부순환로를 이용하면 5km 거리를 10분 내에 갈 수 있지만 시내로 가야 해 2km를 더 돌아가야 한다.

기업들은 최소한 주행 속도가 느린 낮 시간대만이라도 자동차전용도로 주행을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송지용 한국스마트이모빌리티협회 사무국장은 "서울 자동차전용도로의 주간 통행속도는 시속 26.1~55.8km였다"며 "안전장치가 마련된 초소형 전기차가 주행해도 무리가 없는 속도"라고 말했다.



"주행속도 느린 낮 시간대 통행 허용해 달라"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의 산업 생태계 보호를 위해 가능한 부분에 한해서는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차량들이 빠르게 달리지 못하는 낮 시간대에는 초소형 전기차도 자동차전용도로 진입을 허용하는 등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윤재 교통안전공단 책임연구원은 "유럽 초소형 차량에도 없는 안전장치를 담았기 때문에 주간에는 서울 시내 자동차전용도로에서도 충분히 승객을 보호할 수 있다"며 "경기 불황 시기에 초소형 전기차를 필요로 하는 국민의 수요와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해 소관부처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는 초소형 자동차에 적합한 충돌 안전성 기준을 마련하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에서는 초소형 자동차가 자동차전용도로를 달리기 위해 갖춰야 할 안전 기준이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강윤원 도로교통공단 교통과학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초소형 전기차의 최소한 안전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며 "국토부가 자동차로 인정해 놓고 자동차전용도로 진입을 막는 현행 규칙을 손봐야 한다"고 밝혔다.

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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