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5일 윤석열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 간 회동과 관련해 "대통령께서 하루속히 야당 대표와 먼저 만나 국가 위기의 극복방안을 논의하는 게 순리이고 순서"라고 밝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전날 윤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 회동 추진을 동의했음에도 숙고 끝에 고사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 1년이 다 되도록 야당 대표와 회동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이재명 패싱'으로 비칠 수 있는 부담을 의식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언론 입장문을 통해 "어제 이 대표의 말씀은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우리 정치가 하루빨리 정상화되길 바라는 충정에서 하신 것으로 이해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을 향해서는 "민생 회복과 정치 복원을 위한 좋은 길을 선택해 주실 것을 다시 한번 정중히 요청드린다"고 했다. 그간 여야 영수회담을 요청해 온 이 대표가 "괘념치 않겠다"고 양해했음에도,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회동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박 원내대표의 결정엔 적잖은 고민이 있었다. 여야 협치와 정치 복원의 물꼬를 트기 위해 박 원내대표라도 윤 대통령을 만나야 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지도부 내 친명계 인사의 반대 의견이 공개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서 "대통령이 원내대표부터 만나겠다는 것은 격이 안 맞는 것"이라며 "지도부 입장에서 반대한다"고 밝혔다. 반면 여야 협치의 물꼬를 트기 위해 소통이 시급하단 의견도 있었다.
박 원내대표의 고사는 당면과제 중 하나인 당내 통합을 우선한 결과로 해석된다. 민주당에선 이 대표의 회동 요청에도 응하지 않다가 갑자기 원내대표부터 만나겠다는 대통령실의 제안은 당내 분열을 노리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이 많다. 정치 복원이라는 명분으로 박 원내대표가 회동에 응할 경우 당내에서도 친명계 의원들과 '개딸' 등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집중 공세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제 막 선출된 박 원내대표가 대통령을 먼저 만나기엔 정치적 부담이 컸을 것"이라며 "부작용을 고려해 '심모원려(깊이 도모하고 멀리 생각함)'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박 원내대표의 고사 입장에 대해 페이스북 글을 올리고 "당내 사정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이지만, 여야 협치의 소중한 계기가 일단 무산된 것에 대해서는 아쉽게 생각한다"고 반응했다. 윤 원내대표는 "복합 위기를 극복하는 데 여야가 있을 수 없고, 민생 현안도 산적해 있다"며 "위기극복과 민생회복, 정치복원을 생각해서 향후 만남을 결정해 주면 언제라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대표는 여야 협치를 모색하는 차원에서 오는 10일 대구를 방문해 국민의힘 소속 홍준표 시장을 만날 계획이다. 회동에서는 대구-광주를 잇는 '달빛내륙철도' 사업 추진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야 공통 대선공약이었던 '달빛내륙철도' 개설이 탄력 받기 위해서는 특별법을 통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가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