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 진료실을 찾는 환자 나이가 점점 많아지는 걸 실감한다. 필자는 고혈압ㆍ심부전 같은 심혈관 질환을 다루기에 고령 환자가 많다.
그런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70~80대 환자가 내원하면 몸도 불편하고 말도 잘 못 알아듣기에 동반 자녀가 귓속말로 ‘통역’을 해주거나 문서 프로그램을 열고 큰 글씨로 보여드리며 대화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80~90대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게 됐다. 골절로 입원한 100세 넘는 어르신들을 상담하는 일도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해 국내 65세 이상 인구가 901만8,000명으로 전 인구의 17.5%를 차지한다. 2025년에는 20.6%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다. 이제 곧 고령 인구 1,000만 명 시대를 맞는다.
이 같은 고령화 속도는 저출산과 맞물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고령인에게 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만성질환인 고혈압도 덩달아 증가해 65세 이상인 고혈압 환자가 급속히 늘고 있다.
다행히 ‘젊은’ 고혈압 환자도 고령인 고혈압에 대해 알고(인지율) 의료기관을 찾아 치료하는 비율(치료율)이 10년 전보다 크게 향상됐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그리 행복하지만은 아닌 게 드시는 약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 흔한 고혈압뿐만 아니라 당뇨병ㆍ이상지질혈증 같은 만성질환과 함께 관절염ㆍ치매ㆍ위장병ㆍ전립선 질환 등 다양한 질환을 앓기에 이곳저곳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국내 고령인 환자의 70% 정도가 약을 5개 이상 복용한다고 한다. 이처럼 먹는 약이 많다 보면 입원ㆍ응급실 방문ㆍ사망하는 사람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물론 일시적으로 필요한 약도 있지만 여러 약을 계속 먹으면 새로운 증상이나 질병이 생기게 되고, 복용하는 약은 점점 늘 수밖에 없다. 먹는 약이 많다 보면 정작 중요한 약을 빼놓게 돼 혈압이 갑자기 높아지거나 심부전 등이 악화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먹는 약을 줄이려는 노력은 요즘 유행처럼 만들어지는 복합제(한 알에 두세 가지 약이 들어 있는 제형)가 조금 도움 되기도 하고, 정부도 시스템을 만들어 여러 병원에서 처방받는 정보를 공유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이 의사와 상의해 정말 필요한 약과 아닌 것을 구분하고 먹는 것이다.
비교적 질병 경과가 좋고 혈압 조절도 잘 되는데 또 다른 문제는 마음이다. 여러 가지 질병을 앓는 어르신일수록 더 그렇고, 배우자가 많이 아프거나 요양병원에 보냈거나 사별한 분은 우울ㆍ불안하고, 경제적 문제까지 겹치면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어진다.
게다가 치매가 오면 절망적이다. 나는 어르신들에게 되도록 사람을 많이 만나고, 근처 공원이나 아파트 주변, 뒷산, 시장 등 걷는 것만 해도 좋다고 조언드린다.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가볍게 운동하는 게 노년기 우울증 극복과 항우울제ㆍ수면제 등을 줄이거나 끊는 데 도움이 된다. 가벼운 운동은 심장 건강에도 좋다. 물론 자녀들이 부모님을 자주 챙기는 게 마음 건강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